이탈리아의 색채를 찾아서<클림트와 리치 오디의 기적>展

마이아트뮤지엄 리치오디현대미술관 컬렉션 전

by Daria




좋아하는 화가들이 좀 많기는 하지만 어쨌든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역시 내가 사랑하는 화가들 중 한 명이다. 난생처음 그의 작품 <Pallas Athena>를 보고 몹시 강렬한 전율을 느꼈던 소녀는 그 후 그의 빈 대학(University of Vienna) 벽화를 접하면서 완전히 그의 팬이 되었더랬다. 그의 작품세계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보니 그는 살아생전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고, 미술사적으로도 대단히 가치 있는 수작들을 여럿 남긴 엄청난 화가였다. 그런 그의 이름을 걸고 전시가 열렸다. '클림트와 리치 오디의 기적'.

리치 오디(본명:Giuseppe Ricci Oddi)는 이탈리아의 법학자이자 미술 수집가로, 후에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Galleria d'Arte Moderna Ricci Oddi)을 건립하기에까지 이른다. 이 전시는 바로 그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컬렉션이며, 미지의 도난 사건으로 유명해진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 작품을 들여와 꽤 의미 있는 관람 기회를 제공한다. 사실 이 전시 중 클림트의 작품은 이 <여인의 초상> 한 작품뿐인데 전시명에 클림트라는 이름을 걸어놓은 것이 조금 멋쩍긴 하다. 홍보를 위하여 그리했겠지만 아무래도 단 한 작품밖에 없는 화가의 이름을 전시명으로 택한 것에 대하여는 왠지 민망함을 감출 수 없다. 왜냐하면 함께 간 친구에게 '클림트'를 만날 수 있는 전시라 소개하며 동행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전시 거의 막바지쯤 이르러서 겨우 한 점 만나볼 수 있었음에 나도, 친구도 둘 다 당황하게 만들었던 클림트의 작품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Lady)>은 두 가지 특별한 이유로 미술계에서 유명세를 얻게 된 그림이다. 현재 흑발의 올림머리와 밝은 색의 옷차림을 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여인의 모습은, X-ray 조사 결과 짙은 갈색의 머리와 챙 넓은 모자 등 본디 다른 모습으로 그렸던 여인 작품 위에 덧칠하여 변경한 이중회화 작품이라고 하며, 화가가 그리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이 작품은 한차례 도난되었다가 약 22년 만에 어이없게도 미술관 벽 속에 숨겨진 채로 발견된 바 있다.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 도난 사건 또한 미스터리로 남았다고 한다. 위와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이 작품은 높은 희소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그러한 유명작품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다. 실제로 마주한 <여인의 초상>은 배경의 짙은 초록빛 색채와 대비를 이루는 여인의 맑고 고운 피부, 밝고 투명한 색감의 옷이 신비롭고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관람자를 응시하는 듯한 여인의 몽환적인 표정이 어우러져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비록 단 한 점뿐이지만 매력적이었던 클림트의 작품 외에도 이번 컬렉션의 다른 작품들도 무척 예쁘고 흥미로웠다. 본 전시는 인물화, 풍경화 등 다양한 회화들이 열두 개의 섹션을 통해 소개되고 있었으며, 대체로 색채가 예쁘고 부드러우며 따뜻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한 작품들만 가져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전시로만 놓고 보면 리치 오디의 취향이 어떠한지 잘 알겠다. 이 전시를 방문한 날은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부드럽고 따뜻한 계절의 색감이 선명히 느껴지는 그림들을 보며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봄햇살에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보기만 해도 봄 향기가 나는 듯하다.


어린 시절 이맘때쯤 맡을 수 있었던 저녁의 풀향기와 차분한 분위기가 새록새록 떠올라 매우 좋았던 작품



함께 간 친구와 나는 작품 취향이 아주 확연하게 달랐는데, 이를테면 나는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듯한 평화롭고 따뜻한 풍경화에 주로 마음이 동하는 반면 내 친구는 해가 지고 난 후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의 고요하고 차분한 풍경화에 주로 마음이 동하는 듯하였다.


내 친구가 유난히 좋았다고 한 작품들



또한, 미국 뉴욕에서 나고 자란 내 친구는 이탈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어 미국인임에도 이탈리아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녀는 전시를 보더니 거의 다 이탈리아 북부 및 중부 작품들에만 조명이 집중된 것 같아 아쉽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던졌다. 그래서 찾아보니 컬렉션 작품 시기의 이탈리아 미술 중심지는 북부 도시에 주로 형성되어 있었고,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또한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아마 이러한 영향에 의해 이탈리아 북부의 미술 작품들이 많은 것으로 추측해 본다.


이렇게 '남부의 빛'이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 남부 쪽 미술을 조명하는 섹션도 있다.



이번 전시는 '클림트'라는 이름에 낚여서 가긴 했지만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의 아름다운 매력, 그리고 이탈리아의 미술 수집가 리치 오디라는 사람을 알게 된 소중하고 뜻깊은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며 겨울의 한기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추운 겨울에도 끝이 있으며 그 끝은 곧 봄의 시작임을, 또한 그 봄이 곧 머지않았음을, 모든 것에는 끝이 있으며 삶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순환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됐다.



또한 좋았던 작품들을 첨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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