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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Sep 26. 2023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그리고 SAC여름음악축제

S. Rachmaninoff | Symphony No.2, Op.27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는 듣는 사람의 마음속 심연에 바위를 떨어뜨려 파문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특별한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보통의 평화로운 티타임 때에 듣기보다는, 머릿속이 복잡하여 정리되기를 간절히 바랄 때나 심란할 때, 혹은 기분이 울적할 때 주로 찾아 듣는 편이다. 일부러 이러한 규칙을 정해둔 것은 결코 아니나 돌이켜보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 데 있어 무의식적으로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더라. 그런 때에 그의 음악을 다 듣고 나면 사소한 무언가라도 깨달음을 얻거나 심리적 불안의 치유를 받는다. 단순히 음악이 ‘듣기에 아름답다‘, 또는 ’구조적으로 짜임새가 완벽하다’ 등의 이론적인 차원을 넘어서 그의 음악을 통해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빠져 들어가 그곳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똑바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어떻게 나에게 그러한 만남으로 안내해 주는 것일까. 전공자도 아닌 그저 하찮은 음악애호가일 뿐인 내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는데, 그의 음악은 그 아름다운 선율에 러시아 음악 특유의 멜랑꼴리함의 정서를 담고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쉽게 짙은 감상에 빠지도록 이끄는 한편, 그의 멜랑꼴리함은 극단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의 감정과 이성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 중간에서 양쪽을 모두 다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상태를 제공한다. 한없이 감정의 폭발을 향해 치닫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그의 음악에게서 공감을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어떠한 진리의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내게 있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라 하면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물론 그의 모든 곡들에게 똑같은 정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님은 당연하다.)


그의 음악에서 내가 구하는 가치가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곡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교향곡 2번, Symphony No.2 in e minor, Op.27이다. 무려 한 시간이라는 긴 곡이다 보니 연주를 듣는 동안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형태 또한 다양하다. 이 곡은 나의 손을 잡고 구름 위로 데려가주기도 하고, 지하 동굴 속으로 데려가주기도 하며, 때론 푸르른 청보리밭으로, 수평선이 잘 보이는 고요한 바닷가로, 거친 파도가 이는 풍랑 속으로, 마침내는 나의 기억 속 어린 시절 내가 쓰던, 분홍빛 가구들과 수많은 책들로 가득 찬 내 방으로까지도 데려다준다. 이 하나의 곡 안에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으니 마치 죽기 전 내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듯 내게 매우 의미 있는 이 곡을 최근에 예술의 전당 여름 음악축제에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안토니오 멘데스(Antonio Mendez) 지휘자의 연주로 듣게 되었다. 아무 때나 가벼운 마음으로는 들을 수 없는 곡이라 근래 오랫동안 듣지 않았는데 이 연주회를 통해 오랜만에 들었다. 사실 상설오케스트라가 아닌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보니 혹시라도 너무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일이 생길까 봐 짐짓 기대를 내려놓고 연주회장을 찾은 것이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아주 유려한 연주 덕분에 큰 감동과 충격을 받고 왔다. 한 시간에 달하는 긴 곡임에도 불구하고 듣는 내내 길다고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연주를 통해 이 곡이 온갖 음표로 나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말들을 건네는데,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나를 더 잘 알아주는 존재는 세상에 없을 것 같아서, 이 선율과 나를 제외하고 더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속세의 그 어떤 무엇도 이 순간 나에게는 무용한 존재로 느껴졌다. 금은보화도, 부귀영화도, 심지어는 사람도 말이다.

문득 내가 지금까지 삶에서 좇아오던 것들의 실체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집에 가는 내내 멍했다. 연주를 듣고 귀가하는 길에 내가 지나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게임 세상 속의 npc처럼 보였다. 갑자기 내가 세상에서 분리되어 붕 떠 있는 것만 같았다. 단 한 곡의 연주에서 이러한 범상찮은 심상이 야기된 것이다. 오랜만에 들었다곤 하지만 한두 번 들은 곡도 아닌데 이토록 새삼스럽게 깊은 감명을 받다니 참 재미있다.


인간의 삶이란 모두가 알고 있듯 유한하며 일회성이다. 사후세계의 존재 여부는 나도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을진대 살아있는 매 순간이 마냥 소중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한 소중한 시간들을 번뇌나 집착 따위로 채우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는 하등 쓸데없는 집착들은 내려놓고 지금 내게 주어진 게임을 즐기자. 게임은 즐기라고 만들어진 것이지 고통받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연주가 끝난 후 커튼콜 인사 때 찍은 사진. (IG @myhugday)






Antonio Pappano가 지휘하는 Staatskapelle Dresden의 Rachmaninoff Symphony No.2 연주♪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자니 희로애락의 소용돌이 속 고요함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 같은 이 작품이 생각난다. <산울림 19-II-73 #307> by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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