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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 Mar 30. 2024

세상의 모든 파랑새들에게 쓰는 편지

이틀전 뉴스에서 알려준 소식이 너무 슬펐다. 제주 서귀포시의 한 감귤농장에서 직박구리와 동박새 이백마리가 집단 폐사했다는 뉴스였다. 원인은 누군가 고의로 귤에 농약을 투입했고 그것을 새들이 먹다가 .. 그런 변을 당했다고. 무서운 세상이다. 아름다운 새들의 허무한 죽음을 애도하며 깊은 새벽에 주님께 기도드렸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요즘에는 더... 분노하고 싶지가 않아서, 내 코가 석자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좋아하는 일은 글쓰기니까, 평화와 행복이 더 좋아서, 다른 방법과 다른 길 위에서 구하는 기쁨이 내게 더 편안해서, 등등의 이유로... 

 하지만 시대가 하수상해서 두렵다. 최소한 허무한 죽음만큼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닐까. 동물이든 사람이든, 어떤 국적을 지녔든, 인종이 무엇이든, 성별이 무엇이든... 

 몇 년전에 옆 도시에 사는 시인의 북토크에 놀러간 적이 있다. 사실 나는 그녀가 여성의 날 행진에 참여하길 거절해서 나 혼자서 그녀에게 서운했었었다. 북토크에서 시인은 시가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인에게 거부감을 느꼈었다. 함께 하지 않으면서 고립된 채로 독립출판이라는 비효율적 방법으로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인은 생계도 훌륭하게 꾸리고 있고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인 것 같다. 시가 혁명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사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활자는 활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생각과 인생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반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배울 것이 있다고 나를 달래본다. 

 요즘 말과 글이 허무한 것 같아 울적했었다. 그래도 이것도 노동이라고 기쁜 생각을 해본다. 나는 혁명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웃고 싶고, 나는 울고 싶다. 나는 내 소설과 칼럼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전한다, 라고 생각하면 어깨가 으쓱하고 힘이 난다. 

 다시 새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새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동물인 것 같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 책상위에는 <한국의 새>라는 책이 있다. 이우신, 구태회, 박진영 선생님들이 짓고 타니구찌 타카시 선생님이 그림을 그린, 한국에 살고 있는 새들에 대한 도감이다. 많은 새들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데 오늘은 파랑새를 찾아보고 싶었다. 

 파랑새과는 “끝이 구부러진 강한 부리와 넓고 긴 날개를 가진다. 금속광택이 있는 아름다운 색채를 띠고 있다. 보통 전신주와 나무 꼭대기, 죽은 가지 등에 앉아서 곤충류를 기다리다가 공중에서 잡아먹는다. 회전비행과 같은 독특한 구애비행을 하며, 보통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고 한다. 

 파랑새는 희망의 상징이라고 하던데. 한국에선 쉽사리 볼 수 없는 새 같기도 하고...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파랑색 새를 숲을 걷다가 한번 보고 싶다. 그 새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싶다. 파랑새를 볼 수 없다면 새에게 편지를 쓰겠다.  

 너는 정말 존재하는 새일까? 네 친구들이 나쁜 인간들 때문에 죽었어... 미안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나는 외로운 것도 고독한 것도 아니야. 착한 마음을 보여주며 잘난 척 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정말 희망을 의미하는 성스러운 새라면 어딘가에 잘 숨어 있다가 꼭 꿈에만 나와주길 바래. 지금 세상은 너무 나쁘고 위험해. 죽지 말고 다치지 말고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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