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즘에는 도서관에서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도서관은 휴관중이라 청소와 방역업무만 하고 있고, 미술관에서는 관람객 응대 업무를 한다. 두 곳에서 모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오늘 전시장에서 잠깐 이상한 기분을 느낀 것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내가 있는 1층 전시장에는, 컬러풀한 롤러스케이트, 커텐, 공룡인형, 원피스들이 배치되어 있다. 마치 소녀들이 한바탕 놀다 간 것 같은, 파티 후의 장소이다. 오늘 내가 멍해졌던 기분을 느끼게 된 오브제는 바로 쿠션더미였다. 오렌지색, 남색, 보라색 등의 빛나는 형광색의 베개 더미 위에, 다트가 꽂혀 있었다. 그걸 사진으로 찍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살해현장 같았달까. 솜사탕같은 색깔의 베개들에 꽂힌 다트들.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사랑에 빠진 어린 연인들이 말다툼을 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은 소녀들이 사랑의 마법에 저주를 거는 것 같기도 하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게, 어떤 덩어리를 던져주는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여전히 미술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 그 다트가 꽂힌 베개더미들이 인상깊었다. 단조로운 내 상상력에 새로운 자극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발상과 표현들이 있구나.
2.트위터를 자주 하는데, 그곳에 링크된 어떤 칼럼을 읽다가 침울해졌다. 한국 사회의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를 비판하는 이충걸씨(전 GQ편집장으로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의 칼럼이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나이만 먹은 어른들”을 비판하는 논조였다. 그런데 그가 비난하는 게 꼭 나인 것 같아서 시무룩해졌다. 특히, “사색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인간”을 경멸하는 문단에서 나는 침울해졌다.
미술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다가 왠지 울컥했다. 나는 사색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빈깡통같은 사람이지만, 이런 나라도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 거야, 하고 괴상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휘발성이 강한 트위터에 일기를 몇줄 썼다. 영어로. 영어 잘 못하지만 영어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I’m empty but I’m okay. I think I’m a space where someone can move in.
눈물이 줄줄 흘렀다. 써놓고 보니 너무 맞는 말이었다. 난 empty, 비어있다. 공허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난 내 것이 없는 인간이다, 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된다. 눈물이 흐르자 개운해졌다. 더 울고 싶었다. 내 비어있음으로 누군가 들어와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라는 빈 공간에 애착을 두고 보살피고 아껴주면 좋겠다. 아름다운 색깔의 베개도 들여놓고, 향초도 피우고, 반려동물도 낮잠을 잘 수 있게 잠자리를 깔아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인간의 형태가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이동하는 인간이기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혹은 공간이 나인 것 같다. 채우는 사람이기보다 타인으로 채워지는 이가 나인 것 같고...
깊은 새벽에 천장에 지는 빛과 그림자를 멀거니 보다가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