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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Aug 21. 2024

짝꿍으로 연결된 포유류 여섯 마리

너희들이 짝꿍이라서 참 다행이야.

우리 집에는 여섯 마리의 포유류가 산다.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는 4마리와 고양잇과에 속하는 고양이 2마리. 호모 사피엔스 4마리 중 2마리는 형제여서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고, 나머지 두 마리는 서로 전혀 다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고양잇과 2마리도 형제이므로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유전자를 보유한 호모 사피엔스 2마리가 한국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오세아니아 대륙으로 건너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호모 사피엔스 형제 2마리를 낳았다. 사실 이들도 몰랐다. 둘의 유전자를 골고루 섞어 놓은 형제를 키우는 인생이 찾아 오리라는 것을. 삐약삐약 네발로 기어 다니며 우는 아이들이 혼자 옷을 갈아입고 걱정 없이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키워놓으니 6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다시는 네발로 기어 다니는 아이를 키울 일이 없을 거라 다짐했건만 무슨 일인지 그들의 머릿속에 지우개였나 보다. 이번에는 모든 생을 네발로 살금살금 걸어 다니는 고양잇과 2마리를 돌보는 인생을 맞닥뜨렸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들이 선택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 집의 여섯 마리의 포유류 중 단 한 마리만 여자다. 바로 나.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싶지만 이게 인근 슬쩍 기분 좋을 때가 많다. 모두 나만 바라보니까…?


또 한 가지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모두 짝꿍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족쇄라고 우겨보는 결혼이라는 약속으로 맺어진 둘, 인간의 피로 맺어진 둘 그리고 고양이의 피로 맺어진 둘. 둘과 둘과 둘.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고, 그래서 당연히 고독한 거라고 누군가 그랬었는데.

나는 혼자인 것도 함께인 것도 참 좋다.


사실 아이를 낳고 혼자일 수 없는 시간을 겪고 나니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사무치게 깨달았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혼자 겪어내는 사투, 지금 막 끓인 라면을 불기 전에 호로록 먹을 수 있는 여유,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도 있다는 걱정 없이 온몸으로 지랄발광 댄스를 출 수 있는 시공간. 혼자여서 좋은 것은 얼마나 많은지 사실 다 열거하자면 지구를 몇 바퀴나 돌지 모르겠다.


반면 둘이어서 좋은 것은?

필리핀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나무는 혼자 서 있을 수 있지만, 숲은 함께 자란다’


인생을 살아보니 혼자 해서 좋았던 일들의 많은 부분이 함께하면 배 이상 좋은 경우가 내게는 더 많았다. 밥도 함께 먹으면 더 맛있고, 영화도 함께 보면 더 기억에 남았고, 음악은 말해 무엇하랴.


‘함께하는 순간마다 인생은 더 의미 있게 된다.’ 존 듀이


내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닌 것들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일 때는 존재가 더욱더 명확해졌다. 마치 어린 왕자에게 장미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남편과 내가 평생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아이들도, 고양이들도 서로의 안위를 약속할 수 있는 소중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알고 있다. 늘 좋을 순 없다는 것을. 때로는 서로 별것 아닌 이유로 박 터지게 싸우기도 할 것이고 (물론 지금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 투닥 모드가 일상이다.) 또 어떤 날은 마치 고양이가 서로 아픈 곳을 그루밍을 해주는 것처럼 서로 보듬어 주기도 하지 않을까? 싸워봐야 너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 서로 알아갈 수 있다. 풍선을 너무 세게 끌어안으면 터지는 것처럼 늘 붙어 있고 만 싶은 짝꿍 사이에도 지켜줘야 하는 거리는 존재하니까.


아직 어린 포유류 4마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치고받으며 배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주하게 될 혹은 이미 마주했을 냉혹한 현실을 조금 더 지혜롭게 잘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다.


가족이 늘 든든하게 서로를 받쳐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때로는 아니어도 내가 조금 더 건장하게 지지대가 되어 줄 수 있음을 언젠가 아이들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참 다행이다. 짝꿍이어서. 혼자가 아니어서.

함께여서 참 다행이다.


#나크작 #앤크작 #작가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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