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단팥빵

by YJ Anne

쁘렝땅 제과점 봉지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는 순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남편과 연애할 때 종종 사 먹었던 고로케와 단팥빵의 고소한 내음은 빵집을 지나치는 발걸음을 따라와 꼭 한 번씩 그녀의 코끝을 스쳐간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장을 볼 때마다 십원 하나까지 세어가며 아껴 쓰는 그녀인데 오늘만은 이 제과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오늘이 순이와 남편이 결혼한 지 8년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오늘따라 시장에서 돌아오는 그녀의 발뒤꿈치에 빵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끈질기게 달라붙었고, 유독 남편과의 연애시절이 생각나는 순이는 이를 뿌리칠 수 없었다.


행복한 마음은 잠시, 현실의 순이에게는 발걸음을 자꾸만 멈칫거리게 만드는 여러 가지 걸림돌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시어머니와 다섯 살짜리 어린 조카였다. 시동생이 맡겨 놓고 간 작고 어린 사내아이. 착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진 장남인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시어머니가 조카를 데리고 와 당분간 자신들이 돌보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에 한 마디조차 불편함을 내비친적이 없다.


별도 달도 따다 준다고, 아니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 준다는 약속 등은 한적도 없는 그였다. 그래도 순이는 내심 남편이 아주 조금이라도 동생에게 한 마디 언질이라도 할 줄 알았다. 남의 편이라고 하더니 그는 단어 그대로 남의 편이었다. 곱디 고운 삼 남매, 내 새끼들 입에도 들어갈 음식이 모자라는 형편에 조카라니… 자기 아들을 맡기고 간 시동생보다 시어머니가, 그리고 남편이 더 원망스러웠다.


시어머니는 어린 조카가 불쌍하지 않으냐며 나보고 좀 잘 챙겨주라고 당부하시듯 말씀하시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때로는 내 자식도 미워 죽겠는 판에…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떡 하니 집 안으로 들어온 사내 녀석이 가여워 보일 때는 잠시, 매번 괜스레 주는 것도 없이 미운 마음만 앞선다.


아… 빵도 딱 4개만 샀는데… 빵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어떻게 잘 숨겨 들키지 않고 무사히 방 안으로 들어가느냐가 오늘 순이가 마주한 최대 난제였다. 그녀가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는 집은 황토흙으로 지어진 아주 옛날 한옥이다. 마루를 가운데 두고 두 개의 방문이 마주하고 있는데 도무지 이 고소한 냄새를 달고 몰래 순이네 식구가 쓰는 방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차라리 하늘에 별을 따는 것이 더 쉬워 보이기도 한다.


고소한 빵의 설렘도 잠시 순이는 복잡한 마음을 떠안고 집으로 향했다. 발자국에 꾹꾹 애꿎은 원망을 눌러가며 마침내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시어머니는 마실 가셨는지 기척이 없으셨다. 속으로 ‘휴우… 다행이다’를 외침과 동시에 조카와 시어머니가 지내는 방문이 빼꼼히 열렸다. 아씨… 그리고 순이는 저도 모르게 다섯 살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린아이잖아. 이제 다섯 살인데, 엄마 아빠도 없이 얼마나 가여워.’

순이의 마음속에서 때아닌 천사와 악마의 언쟁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책임지지 못할 애를 누가 낳으래? 왜 엄한 나한테 떠맡기냐고 떠맡기길!’

‘시어머니가 길게 지내지는 않을 거라며 얘기하셨잖아.’

‘너는 여섯 달이 짧은 가봐?’

‘매일 눈칫밥 먹는 애 가엾잖아. 빵이 들어있는 봉지 본 것 같은데 하나는 다 못주더라도 조금만이라도 나눠주는 건 어때? 응?’

‘나도 모자라. 내 새끼들 하나씩 나눠주고 나면 달랑 하나 남고, 그걸로 남편이랑 저녁에 나눠먹으려 했단 말이야. 이걸 누굴 주라고? 됐어. 밥 주잖아. 이 어려운 살림에 먹여주고 재워주면 다한 거지. 뭘 더 바래?’


사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순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녀도 부모인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순이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당신이 순이라면? 과연 늘 매사에 착한 며느리, 착한 큰엄마의 탈을 쓰고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어느 상황에서도 양면성은 존재하는 법. 그녀가 어떤 마음의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해도 우리는 내면의 잣대를 그녀를 향해 가리킬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놓고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날 순이는 다섯 살 사내아이의 눈빛을 마음속 저 뒤편으로 보내지 못하고, 원래 주려고 했던 호박죽 대신에 자신의 몫이었던 까맣게 윤이나며 달달한 냄새가 풍기는 단팥빵 반쪽을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년에게 내밀었다.


사진출처 :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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