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쌓기
우리에겐 계획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장대한 계획.
크리스마스이브,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 날씨가 덥다는 일기예보를 미리 체크하고 몇 달 전부터 미리 시즌권을 끊어 놓은 워터파크로 고고씽 하려는 계획말이다.
크리스마스이브 당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문을 열어보니 더운 공기가 후욱~ 하고 내 온몸을 덮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에잉? 지금 이제 8시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뜨겁다고? 태양이 가장 뜨거워지기 전에 놀고 오려던 계획을 세워뒀던 남편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우짜지? 갈 수 있을까? 접을까?
아니, 원래 워터파크는 태양이 뜨거운 날 가는 거 아닌가?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Yes를 외치겠지만 우리 집에는 2살 무대뽀 회장님이 있다. 뭔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당연히 귀여운 두 다리로 우다다다 달려가지만 그게 아니라면 엄마에게 안겨서 한껏 높이 보이는 세상을 즐기는 아이. 나도 네 맘과 동일하지만 이 회장님, 참 튼튼하시다. 무게는 마지막 쟀을 때가 대략 13kg 정도였는데 지금은 적어도 2kg는 더 나가는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후덜 거리는 팔이 내 마음에 더욱더 확신을 준다. 그러니 이 날씨에 무대뽀 회장님을 모시고 워터파크는 아주 대단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의 짜증이 겁이 난 겁보 쫄보 부모는 집에서 열심히 놀아주리라 다짐하고 계획을 변경했다. 뭐 특별하게 한 건 없지만 집에서 기찻길도 만들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도 쓰고, 금붕어들에게 선물로 어항 청소도 해줬다. 물론 어항 청소는 언제 하든 다음 주 안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리 당겨서 해버렸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바닥에 흘린 물 따위는 닦으면 그만이다.
당초 계획은 크리스마스를 가운데 두고 이브와 26일 박싱데이에는 워터 파크를 다녀오려 했었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에는 외출을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날은 온 국민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호주 대대적으로 대부분의 상점과 음식점들이 문을 닫는다. 심지어 큰 마트는 둘째치고 동네 작은 마트들도 닫는다. 그러니 장을 보러 갈 수도 없고, 외식을 하러 나갈 수도 없다. 그래서 25일은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보내자 라며 애초부터 다짐을 해놓으면 당황할 일도 없으니 마음도 편하다. 혹여라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호주로 오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꼭 알아두시면 좋겠다.
워터파크를 대신한 우리의 선택은? 바로 ‘진저 브레드 맨’ 쿠키 베이킹 클래스.
빵이 주식인 나라이다 보니 동네 마트에만 가도 재료를 하나하나 구입해 계량하지 않아도 되는 믹스팩이 있다. 특히 진저브래드맨 같은 생강향이 들어간 쿠키를 만들려고 하면 특정한 향신료가 꼭 필요할 때가 있는데 믹스팩이라면 부담감 완전 제로다. 추가되는 재료는 버터, 계란, 우유정도이니 각 가정에서 쉽게 아이들과 함께 계량하면서 재미있는 요리교실로 추억을 만들 수 있으니 금상첨화 아닐까?
1호는 밀가루를 마구 흩날리지 않을, 그러니까 2살 반에서 3살 무렵부터 종종 나와 베이킹을 함께했다. 물론 베이킹 전에도 쌀 씻기, 채소 자르기 등 너무 어질러서 엄마의 멘탈을 헤치지 않을 정도는 늘 함께 했었다. 그래서인지 5살인 지금은 박스에 적힌 레시피 정도는 자신이 읽어가며 같이 계량을 하고 반죽을 하는데 실력이 일품이다.
물론 진저 브래드맨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기 강아지 인형이라며 엉뚱한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집에서 키우는 금붕어 삼총사도 꼭 만들어 줘야 한다며 내 눈에는 그저 동그랗기만 한 덩어리 3개를 얹어놓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정말 신나게 논다. 모양이 뭐 중요할까?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거. 아이가 즐겁게 함께하면 그걸로 빛나는 시간이다.
진저브래드맨은 서양에서 겨울 무렵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 빵에 생강을 넣어 먹기 시작했던 것이 유래라고 한다. 우리 1호가 생강향이 제법 나는데도 잘 먹는 걸 보면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해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부모들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싶다. 물론 달달하기도 하고, 자기가 창조해낸 작품이라 더 잘 먹는 것도 있겠지.
아직까지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이라 선물도 2개씩 받고 쿠키까지 만들며 재미있게 보냈으니 이만하면 우리의 이번 뜨거운 크리스마스도 근사하게 보낸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언젠가 2호가 제법 크면 우리도 크리스마스엔 산타 클로스 모자를 쓰고 바닷가에서 서핑보드에 몸을 실어보리라. 야심 차게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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