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추억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처음 방문한 건 지난 2012년 2월 말이었습니다. MWC 2012 취재를 위해 자정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정도 날아서 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고맙게도 육체적인 피곤함보다는 낯선 세상에 대한 설렘이 절 지배하고 있더군요. 어쩌면 FC바로셀로나와 메시, 가우디의 도시에 지금 도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몸이 흥분을 유발하는 호르몬이 배출하는 건 인지상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업무와 여행을 병행하면서 많은 사진을 담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어서 카메라를 갖고 있는 이라면 아마도 특히 더 담고 싶은 저마다의 피사체가 있을텐데요, 인물이냐 풍경이냐 같은 분류에서 벗어나서 생각한다면 글쎄요, 따스함, 미소, 교감 등의 메시지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을 때 저는 무척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서일까요, 당시 나들이에서 가장 기억 남는 한 컷을 고르라고 한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 노천카페에서 만난 소녀의 사진에 손이 갈 것 같네요.
호텔에 도착하니 얼리 체크인이 안 되더군요. 시차와 오후 일정 때문에 잠시 쉬려던 계획을 접고 호텔에서 멀지 않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천재 건축가라는 가우디가 설계한 이 성당은 지난 1882년에 착공에 들어간 이후 지금도 계속 건축되고 있는 역사와 시간을 담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죠.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 완공을 예정하고 있다고 하니 과연 그 모습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노천카페에 앉아 시원한 생맥주부터 주문하며 바로셀로나 입성을 자축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때가 바르셀로나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달콤했던 시간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촬영과 원고에 대한 부담 없이 오롯이 바르셀로나의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었거든요.
잠시 후 생맥주와 절묘한 궁합을 연출한 토마토를 올려놓은 바게트를 시작으로 오징어 튀김, 샐러드, 홍합과 새우가 들어간 해산물 요리, 문어요리가 이어지다 그 대미는 빠에야가 장식했습니다. 시차 계산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멀리 낯선 땅에서 낮술(?)의 풍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주변을 둘러보니 따사로운 볕과 함께 커피와 식사를 즐기는 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모습은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잡은 듯 평온해 보였고요. 식사를 즐기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연신 두리번거리던 저의 시선이 고정된 건 강아지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 건너편 벤치에 앉은 노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언제 다가왔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빠 미소를 절로 짓게 만드는 앙증맞은 한 명의 소녀...
손을 내밀어 강아지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소녀를 바라보는 노인의 표정은 부드러웠습니다. 아니 저를 포함해 이 모습을 보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비슷한 영역대의 주파수에서 울리는 따스함을 느끼고 있었겠죠.
잠시 후 유모차를 끌고 뒤따라온 어머니(가 역시 미인이었군요?)가 무언가를 꺼냅니다. 강아지에게 줄 간식을 찾는 것 같군요.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아이의 표정에는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엄마~ 제가 준 간식을 강아지가 먹었어요!
당시만 해도 시츄 네 녀석들과 함께 사는 상황이었다 보니 아빠로서 딸아이의 교감을 나눈다는 것이 어떤 건지 상상만 할 뿐 실질적인 느낌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때 이 소녀 천사의 미소를 담을 수 있었던 행운이 2년 후, 아빠고 되고 현재 딸바보로 살고 있는 제 인생의 복선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와 동물이 좀 더 행복함을 느끼는 세상을 꿈꾸며 꾸밈 없는 이 순수한 미소를 또 한번 담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