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가득한 손가락으로 셔터를 눌렀다!
이제는 십 년도 더 지난 사골 같은 사진을 끄집어 내려니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셔터를 누를 때 이처럼 흥분되던 기억도 많지 않아 잠시 소환해 보려고 합니다.
20006년 4월, 생애 첫 DSLR을 구입하고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제가 너무 좋아하는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의 사진을 직접 담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막상 실행에 옮기니 야구장을 출입하면서 해야할 일을 망각한 체 펜과 수첩을 잠시 내려놓고 뷰파인더로 선수들을 담는 즐거움에서 한 동안 헤어나올 수가 없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이 달달한 행복은 600mm 렌즈로 시합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는 욕망으로까지 이어졌고요.
휴가차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사직야구장에 들린 것인지, 취재하러 내려간 것인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분명한 건 DSLR과 인연을 맺은지 1년 만에 저의 첫 카메라인 5D에 대포(600mm)를 물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괴리가 존재했습니다. 망원렌즈의 특성상 조금만 움직여도 휙~ 휙~ 사정 없이 돌아가는 앵글의 감을 잡는 게 여간 쉽지 않았거든요.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는 카메라의 연사 속도였습니다. 사진 기자들이 쓰는, 소위 프레스 바디는 기본적으로 연사가 빠릅니다.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인물을 찍는 카메라도, 야구장에서 선수를 찍는 카메라도 모두 '촤라라라~~~' 하는 빠른 연사 속도를 자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죠.
그런데 당시 제가 갖고 있던 5D는 웨딩 촬영을 할 정도로 좋은 결과물을 안겨주는 바디였지만, 치명적인 단점 아닌 단점이 바로 연사가 느리다는 것이었습니다. '촤라라라~~~' 하는 사진 기자들 속에서 '철푸덕~ 철푸덕~'하는 홀로 떨어진 리듬감의 셔터음이 울려퍼졌을 때, 절 바라보던 그들의 황당해 하던 표정이란...
타석에서 날아오는 볼을 시원하게 쳐내는 타자의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느린 연사로 운 좋게 맞는 순간이 얻어걸리는 걸 기대하는 건 시간낭비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대안은 타자의 심정(?)으로 셔터를 눌러보자는 것이었죠. 뷰파인더에서 눈을 조금 떼고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걸 확인한 다음,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셔터를 딱 한 번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타자의 스윙 타이밍에 정확히 맞춰 셔터를 누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즐거운 시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담고 싶었던 사진은 스포츠신문에서 볼 수 있는 보도용 사진이 아니라 어쩌면 인물 사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수도 프로라는 이름을 지우고 나면 사람일테니깐요. 공 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승부의 갈림길에서 스쳐지나가는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싶은 욕심이 있었거든요.
앞으로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600mm 렌즈와 함께 그라운드의 모습을 담는다면, 과연 저는 어떤 모습에 셔터를 누를지 가끔 궁금해 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깟 공놀이에 불과할 수 있는 스포츠일지 모르지만 야구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