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서 만나자! 찾아올 수 있지?”
화장기 없는 얼굴로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걸치고 다니던 풋풋한 시절. 꿈 많고 열정 넘치는 추억을 함께 공유했던 친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행선지는 광화문에 있는 덕수궁 돌담길.
결혼 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였으니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쁜 옷을 입고 있는 가로수들이 눈에 띄네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듯 알록달록 옷을 입었습니다. 나무 몸통을 다 두른 뜨개옷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패턴까지 넣어서 뜨개질하려면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을까요. 놀라움에 입이 벌어집니다. 똥손인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죠.
‘어머나~ 너무 예쁘다’
갑자기 몰려든 관광객 인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일행이 없으니 자연스레 담 옆으로 몸을 이동해야했지요.
덕수궁 돌담길 (이효열 작가 작품)무심코 오른쪽을 보니 연타재가 놓여 있었어요. 관광객도 많은데 누가 여기에 이런걸 나뒀지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연탄재에 꽂혀있는 장미 한 송이가 시선을 붙잡습니다.
대충 찢은 듯한 박스 종이에 무심한듯 적힌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정갈한 인쇄체였다면 감흥이 약했을텐데. 날것의 느낌으로 내 마음에 훅 들어온 글귀에 '순간 멈춤 버튼'이 작동합니다.
‘Q; 나는 지금 뜨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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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 역시 그럴 때가 있었지..
.
자문자답을 해보니 목표라는 것을 품고 노력했던 어느 한 시점의 뜨거웠던 과거에만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도전의 과정 속에 뜨거워질 고통의 그 순간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것인가
도전이라는 단어 자체를 나이와 함께 당연하게 반납하며 외면해 온 것인가
단순한 메시지가 주는 여운 때문인지 '내 안의 자아'와 문답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지요. 이제 도착했다는 친구에게 내가 있는 곳을 다급히 알려줍니다
(이 연탄재를 보여줄 요량으로 이곳에 오라고...)
그거 좀 됐는데.. 설치미술이라고 해야 되나 검색하면 나올 거야.
나는 작년에 봤었는데 가만 보자.. 여기 이효열 작가라고 나오네..
뜻밖의 위로를 주고 싶어서 제작했다고 하잖아.
차 한잔 마시자고 재촉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커피숍을 향해봅니다
뜨거워지기까지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점에 통과의례처럼 치러내야 하는 성장통을 두려워한다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크면서 내 삶의 이모작을 준비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요즘. 그 도전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내 안에 연탄재 하나 지피고 서서히 노력의 불을 지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그 기간 동안 펼쳐질 사연들에 집중하며 한번 더 큰 꿈을 꾸어보자고 다독여봅니다.
'뜻밖의 위로'를 선물받은 날이니까요
덕수궁 돌담길 뜨개옷 입은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