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성남 문학으로 읽고 걷다' 수업에 참여했다. 오늘은 수업의 마지막 날로 2차시에 걸쳐 배운 조선 후기 여류 시인이며 여성 성리학자인 강정일당의 사당과 묘소를 탐방하는 날이다.
날씨가 춥다는 예보에 평소 입지 않는 내복까지 입고 나왔다. 목도리에 모자, 장갑까지 완전무장을 하니 안심이다. 집결장소에 도착하자 미리 답사를 다녀온 분은 가벼운 옷차림이다. 묘소까지 가파른 구간이 있단다. 그래도 영하8도에 대비하지 않았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인근에 공사장이 있어 비포장도로 구간이 길었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지나 도착했는데 아쉽게도 정일당 강씨 사당 문은 잠겨있었다. 精一堂 세 글자가 적힌 현판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런데 호기심 많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손가락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구멍 속으로 빼꼼히 들여다보니 위패와 정일당 사진이 있었다. 단정하고 강직한 모습이었다.
사당 앞 추모비에는 성남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정일당과 남편 윤광연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삶과 이상적 부부애를 보여줬다는 내용이었다. 공부한 내용을 복기하며 큰 소리로 읽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사전정보 없이 왔다면 감흥이 적었으리라 .
사당을 지나 묘소로 향했다. 가파른 경사에 낙엽으로 가득 덮인 길은 미끄러웠다. 발을 헛디디면 바닥에 즐비한 밤송이에 찔릴거 같았다. 그래도 밤이 그대로 들어있는 밤송이가 많아 반가운 마음에 사진도 찍으며 올라갔다. 물기먹은 나뭇잎이 있어 다리에 힘을 줘야했다. 기다란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낙엽을 치우며 길을 만들었다.
십여 분 이상 급경사가 이어졌다. 무덤 입구로 들어서면 잎이 팔뚝만 한 후박나무가 있을 거라는 얘기에 부지런히 올라갔다. 목덜미에 땀이 배어 나왔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닦아야 했다.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드디어 잎은 팔뚝만하고 매끄러운 수피를 자랑하는 후박나무가 우리를 반기는 구간을 지나니 넓게 펼쳐진 묘소가 보였다. 두텁게 나뭇잎이 쌓였던 경사로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일곱 개의 봉분이 있는 묘소는 예초작업이 잘되어 정갈했다. 산을 사서 3대 조상과 조상 7위의 묘를 모셨다는데 양지바른 곳이었고 전망도 좋았다. 정일당 묘는 남편 윤광연과 합장묘였다.
“교수님. 정일당의 생일이 음력 시월 보름이라고 쓰여있네요. 내일이 보름이니까 우리가 정일당의 생일 전날 온 거예요. 탐방 날짜를 제대로 잡았습니다.”
“내일이 생신인데 인사하러 왔다고 날씨까지 배려해 주셨나 봅니다”
모두가 이구동성 오늘의 탐방일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기세를 몰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럼 생신 상이라도 차려볼까요? 가방에 있는 간식으로 다과 상이라도 차리죠”
나의 제안에 모두가 기뻐하며 응해주었다. 가방에서 간식들이 나온다. 비스킷, 캔디. 견과류. 콜라. 커피, 귤, 용각산 젤리등 연령대에 맞는 다양한 간식들이 묘비 앞에 놓였다.
간단히 참배를 하고 수업 시간에 배웠던 시 한수를 읊었다. 권학을 노래한 ‘시과(始課) ’다. 조용한 무덤가에 열다섯 명이 읊는 오언절구 시가 노래처럼 울렸다.
시과(始課)라
삼십시과독(三十始課讀)이니,
어학미서동(於學迷西東)이네,
급금수노력(及今修勞力)하면,
서기고인동(庶期古人同)이라
* 나이서른에 공부를 시작하니 학문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네
이제부터라도 모름지기 노력하면 아마도 옛 성인과 같아지리라.
낙엽이 쌓인 내리막길을 조심히 내딛다보니 함께 읊었던 시가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 삼종지덕을 미덕으로 삼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평생 배움에 뜻을 뒀던 여성 문인 정일당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자 생각했다. 여성으로의 삶을 당당히 펼치라 얘기하는 정일당의 목소리를 가슴에 새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