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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Dec 16. 2023

뜨거운 우정 한모금

급행열차를 탄 액체

지하철 급행노선을 이용하게 되었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어 실행해보려는 거다. 중간역을 생략하니 확실히 빠르다. 가던 길만 고집하고 진작 시도해 보지 않음을 후회했다. 급행을 타고 여유있게 약속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올 때마다 혼을 빼놓는 이 곳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복잡함이 있지만 사는 지역이 다양한 친구들이 모이는 중간지점이다. 출구를 몇차례 확인하고 겨우 도착. 주말의 북적임으로 가게마다 대기 손님이 많았다. 식당에 자리가 있을까 싶었는데 언제나처럼 가장 멀리서 온 친구가 일찍 도착해 좌석을 예약해 놓았단다. 마지막 한자리라 운이 좋았다고 방그레 웃는다. 정겨운 미소다.


강산이 세번 변하는 동안 함께해 온 친구들이다.  화장기 없던 풋풋한 얼굴을 기억하는 휴식같은 벗들이다. 세월의 주름을 웃음사이로 발견하게 되지만 우리는 나이를 안먹는다고 항상 동안이라 자부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여도  이의를 제기하진 않는다.


함께 만나면 동아리를 꾸리며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로 급행열차를 타듯 소환된다. 깨방정섞인 익숙한 목소리도 노래소리처럼 울려퍼진다. 본격적인 수다보따리를 풀기전 배를 채우기 위해 선택한 가게는 멕시코 음식점이다.


테이블위에 주문한 메뉴가 하나씩 차려지니 알록달록 색감이 더해진다. 그런데 데킬라 스트레이트 잔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가볍지 않은 술 등장에 메뉴선정자는 세트여서 몰랐다는 반응이다. 데킬라가 멕시코 토속주라서 그렇다는 말에 수긍하며 그렇다면 마셔야 한다는 얘기가 오간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지 않냐고 도수가 있는 술이지만 멕시코 음식을 대하는 에티켓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잔을 부딪쳤다. 왕년에 한 번씩은 마셔보지 않았냐며  호기롭게 술잔은 부딪혔건만 입술만 적시고 내려놓는다. 이건 술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며 일단 도전해보자는 누군가의 말에 술잔에 라임을 묻히고 소금을 안착시킨다. 검지와 엄지 사이에 레몬을 묻혀 소금을 올려 놓기도 하지만 마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20대 이후로 마시지 않은 주종이니 반갑기도 했다. 입술에 인사를 하면 써서 못마신다는 걸,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가벼운 스냅을 이용해 단숨에 들이켰다. 오오 하는 탄성이 이어졌다. 입속으로 들어간 액체는 목구멍으로 직행하자 뜨거운 기운을 품고 식도를 넘어가 일순 머무른다.


 역시 이 맛이지.


터프한 목넘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소금의 짠맛과 라임의 신맛이 데킬라의 쓴맛을 중화시켜 주니. 색다른 풍미를 선물한다.


데킬라는 알로에와 비슷한 아가베가 주원료다. 용의 혀를 닮아서 용설란이라 불리는데 백년에 한번 꽃을 피우니 백년초라 부른단다. 스페인어로는 기쁨과 환희라는 뜻이 있다고 하니 오늘같은 날에 먹기 딱이라며 잔을 부딪혔다. 용띠해를 맞이하는 용띠들이 마시는, 용설란으로 만든 데킬라. 의미를 부여하니 우리를 위한 특별한 한 잔이 되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며 도수 강한 술을 접할 기회가 다들 없었단다. 독한 술은 한잔도 안 했건만 칵테일 한 모금을 마신 친구의 얼굴이 발갛다. 목까지 붉은 기운이 울긋불긋이다. 술을 대하는 몸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어떤 이야기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들. 수다는 모든 맛을 버무려 주는 조미료가 되었다.


평소  마시지않던 데킬라에 오늘의 추억을 담아 또 한잔을 들이킨다. 뜨거운 우정을 품은 액체는 급행열차를 타고 온기를 더한다. 몸 안에 머무는 이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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