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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Dec 19. 2023

취하기 좋은 날

감성을 덧칠하는 날


오늘 일찍 들어오니? 아이들의 귀가시간을 묻는다. 오늘도 모두 늦는단다. 언제 오세요 오늘 반찬 뭐예요를 말하던 먹성 좋은 녀석들이었고  엄마의 이른 귀가를 원하는 목소리에 한걸음에 집으로 향했던 시절이 있었다. 통화 목소리까지 눈에 밟혀 잰걸음을 재촉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잡히지 않을 만큼 멀리 와있다.



아이들의 사생활도 많아지고 귀가시간도 늦어지는 요즘이다. 하교 후 학원 가는 날은 불 꺼진 집안에 혼자 들어가야 한다. 물론 퇴근 후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두커니 혼자 있게 되는 날은 조용한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움츠러들 때가 있다.



짐을 내려놓고 익숙한 부엌 대신 쇼파에 앉으면 티비를 켜고 의미없이 멍 때리기를  하게된다. 그런시간도 의미가 있지만 몇 번의 경험이 누적되니 시간이 아깝다. 챙김의 최전선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건 그토록 원하던 것이지만 허전함의 감정이 존재감을 내비친다. 하루 한 시간정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자 계획을 세우게 됐다. 오늘은 독서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서점에서 책을 읽다 헤어짐이 아쉬울 때는   충동구매를  할수있어 조심해야될 날이다.



그런데 비가 내려 기분이 가라앉는다.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니 그냥 집으로 갈까 망설였지만 집 앞 정류장을 의도치 않게 지나쳐 버렸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오히려 잘됐구나로  애써 포장하며 예정대로 움직인다.



목적지에 내리면 광장에 대형 트리가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는데 오늘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시선이 머문다. 나에게 알은 체를 하고 꼿꼿이 서 있다. 비의 낭만에  젖어버린 탓인지 말랑해진 마음은  못 본 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든다. 나의 결심을 흔들 기세다. 이런 날도 책 읽으러 가냐고 말을 건다.



트리를 보다가 아무렇게나 버려진 희생자들의 시신탑이 떠올랐다.  어제 읽었던 한강의 ' 소년이 온다'의 한 장면이 생각나 마음이 먹먹해진다.  깊은 시선으로 표현된 부분에 지나친 몰입을 했는지 마음이 힘들어 다음 페이지를 읽는게 힘들 정도였다. 영화든 책이든  일상이든 인상깊은 장면이나 분위기를 오래 품는 탓이다.  



가던길을 멈췄다. 소설속 등장인물들은  그날 이후로 평범한 일상을 빼앗겼겠구나. 이 아름다운 풍경도 그리웠겠구나. 괜실히 미안해지며 이 밤의 정경들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알록달록 트리를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오늘 볼수 있는 이 모습들을 놓치지 말자는 생각들이 스몄다. 비바람 탓에 쌀쌀했던 기운은 주변 조명덕분에 따뜻한 기운을 감쌌다. 트리 위에 가장 높이 꽂힌 별장식에도 인사를 해줬다.



화면을 채우려는 듯  주위를 크게 살폈다. 한켠으로 빨간 옷을 입고 종을 흔드는 구세군이 보인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흔드는 종은 일정한 리듬감을 갖고 있어 노래 같다. 빛이 없는 소리인데도 따뜻한 난로처럼 온기를 더한다.



엄마손을 잡고 지나가던 꼬마가 손에 쥔 지폐를 구세군 함에 넣는 모습이 따스했다.  자연스레 지갑을 열어 꼬마의 행동을 따라하게 된다. 마음도 전염이 되는지 이후로 오는 학생도 통에 손을 넣는다 쨍그랑 소리에 얼른 자리를 떴지만 온기를 더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색색의 조명은 황홀경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비를 머금은 장식은 영롱한 빛을 만들고.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등으로 다채롭게 빛났다, 트리 장식의 색감은 추운 날씨의 따듯함을 선물하고. 구세군의 짤랑 거림은 소리가 주는 따듯함을 선물하는 밤이었다.



거리의 분위기는 촉촉 감성을 덧칠했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백화점의 조명을 쫓는다. 1층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장식은 포토존으로 사랑을 받았다. 화려하게 꾸며진 내부를 둘러보기 위한 사람들은 캐럴송을 들으며 사진 찍기에 여념 없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도록 해주는 마법같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설렘을 선물한다.



오늘은 취하기 좋은 날. 술에 힘을 빌리지 않아도 은은한 조명이 마음의 날카로운 부분을 연마시키는 날이다. 굳이 말하자면 따스한 분위기에 취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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