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던 주재자적인 '나'가 착각의 왕좌에서 내려와 본래의 기능적인 '나'로 돌아오는 터닝포인트(변곡점)를 지나는 것이 깨달음의 본질이다. 환영(illusion) 속에서 빠져나오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실상은 마치 전쟁의 폐허같이 상할 대로 상한 심신과 타인과의 관계다. 있는 그대로 흘렀으면 아무런 문제 없었을 것들을 안간힘을 쓰며 망가뜨려 놓은 꼴이다.
망가진 심신과 관계는 냉정하게 책임을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걷지 않을 수 없다. 폐허가 된 황무지 같은 현재를 디폴트(기본 설정값)로 둔다. 회복 불가능한 것들은 과감히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쓸만한 것들은 자기 깜냥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 안에서 더 상하지 않도록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며 조심스레 다루며 쓸 수밖에 없다.
더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보다 우선이다. 득(플러스)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보다 해(마이너스)가 되는 활동을 삼가는 것이 먼저다. 사실 심신과 관계에 데미지를 누적시킨 것은 득 되는 것을 지나치게 추구한 부작용인 경우가 더 많다. 스스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자해를 가한 격이다. 회복(Recovery)의 첫걸음은 일단 잘못된 행동을 멈추는 것.
터닝포인트를 지나도 오래된 습관과 관계는 여전히 남아 끊임없이 세를 과시한다. 그것들과 여전히 다투며 스스로를 상하게 한다면 아직 시작도 못한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처는 36계 줄행랑 즉 다툼을 피하는 것이고, 피할 수 없다면 다음을 기약하며 잘 당하는 것이다. 잘 당한다는 것은 오래된 습관과 관계의 비효율에 노이즈를 섞지 않고 제대로 온전히 각인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