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고통과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는 비효율적 습관을 우회하거나 대체하는 새로운 습관이 점진적으로 강화되는 것이 점수(漸修)이다. 새로운 습관의 쓸모는 기존의 비효율적 회로를 작동시키는 조건들에 처했을 때 얼마나 힘으로 작용되느냐로 검증될 수 있다. 심신의 컨디션도 좋고, 별다른 이벤트나 해프닝이 생기지 않는 순경계(順境界) 상황보다는 힘이 센 무의식의 역린(逆鱗)이 자극되는 역경계(逆境界)에 처했을 때 진짜 호랑이가 된 것인지 종이 호랑이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무의식의 심기가 대놓고 자극되는 확실한 역경계를 제외한다면, 내 경우 새벽에 잠에서 깨어날 때가 점수의 수준을 측정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눈은 감고 잠을 자는 자세이지만 의식은 분명히 깨어있고 대체회로가 워밍업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온갖 생각들이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오며 작용한다. 생각의 내용은 주로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골칫거리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에는 그때 치고 들어온 생각에 제대로 젖어 하루 종일 또는 몇 날 며칠 시달림을 당하곤 했다.
새로운 습관에 조금씩 힘이 생겨, 강한 무의식의 작용과 그로 인한 2차 화살에 당하는 빈도와 심도가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은 워밍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은 아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는 정신 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찾아오는 자극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우왕좌왕 버벅거리며 당하게 되고, 빠져나오는데 애를 먹는다. 알아차림은 거의 즉각적으로 일어나지만, 놓여지고 물러나지는 힘은 아직 충분히 단련되지 못한 것 같다.
매일 새벽 정신 못 차리는 그 순간 버벅거리며 얻어터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 힘이 센 생각 하나를 제대로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속삭임. 미세하다고 한 이유는 너무 자연스러워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고, 힘이 세다고 한 이유는 생각의 2절, 3절의 분명한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고 자기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그런 생각들이 들면 안 된다는 것이 망념의 내용이다.
깨달은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에 되치기를 당한 셈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기적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생각을 부정하며 거세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불필요한 고통과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는 비효율이 점차 소거되어 가는 것 또한 연기적 현상일 뿐이지, 깨달은 '나'의 노력을 통해 증득된 '능력' 때문이 아니다. 잠에서 깨어날 때 쏟아지는 온갖 생각들은 그저 자연스러운 연기적 현상일 뿐이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워밍업 하며 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바로 그 생각이 진짜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