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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Mar 21. 2021

장국영의 Fever(熱)와 Heart(情)로
채운 무대

나의 레슬리 ep49 : 다섯 번의 만남, 한 번의 대화 (5)

1996년부터 2000년까지는 내 레슬리 덕질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시기는 가수로서 또 배우로서의 그가 제2의 전성기를 누렸던 시절과 일치하는데, 그 대망의 피날레는 2000년에 열린 <熱·情演唱會(열정연창회)>였다.


대만에 본사를 둔 록레코드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장국영은 홍콩의 유니버설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후 <大熱(대열)>이라는 광동어 앨범의 발표와 함께 콘서트를 열었다. 

3년 전 <跨越演唱會(과월연창회)>에서 빨간색 하이힐을 선보인 다음인지라 이번에는 그가 또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기대가 컸다. 그 당시 나의 어리고 보잘것없는 상상력으로서는 하이힐이 파격의 최대치라 생각했기에, 그다음엔 무엇이 있을지 못내 궁금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들 또한 심상치가 않았다. 원형무대를 가진 홍함 체육관의 구조를 굳이 일반적인 정면 무대로 바꾸는 중이라고 했고, 의상은 모두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장 폴 고티에가 맡는다고 했다. 자연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이렇게 섹시한 사다코가 어디 있냐, 이 놈들아!



이번에도 팬클럽을 통해 입장권을 구해놓고 홍콩 출국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첫 공연이 시작되었고 이튿날부터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전작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무대의상에 대한 평론도 함께 쏟아졌다. 사진을 보니 긴 장발을 하고서 몸에 타이트하게 밀착되는 청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거나, 그 긴 머리를 곱게 쪽을 지어 틀어 올리고는 치마를 입은 사진도 있었다.


내 눈에는 장국영만이 할 수 있는 파격적이고도 예술적인 시도로 보였지만, 동시에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예감해버리고 말았다. 레슬리를 유독 못살게 구는 홍콩 언론이 또 얼마나 그를 괴롭히게 될지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처럼 나의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저 남자가 치마를 입고 여성적인 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장국영과 장 폴 고티에의 작품은 졸지에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심지어 그의 긴 머리를 일컬어 '마치 (영화 <링>의 TV 브라운관 속에서 등장하는 귀신) 사다코 같다'고 논평한 기사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조롱은 기사에서 멈추지 않았다. 동료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그 멋진 무대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지금도 그의 무대의상을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한 장면들을 보면 화가 난다. 누군가가 오래도록 공들여 시도한 예술적인 시도를 농담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경박함이라니. 당신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시도란 말이다!



장 폴 고티에와 레슬리



사실 나는 장국영의 젠더를 넘나드는 음악적 · 영화적 시도가 데이빗 보위와 매우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장국영 본인 역시 인터뷰에서 데이빗 보위에 대해 몇 차례 언급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홍콩은 이런 파격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너무 작고 편협한 시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데이빗 보위라고 해서 그 여정이 순탄하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홍콩처럼 작디작은 도시에서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비웃음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에 나름 익숙해졌던 걸까, 늘 이런 '만들어진 논란'에 묵묵부답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레슬리가 늘 안타까웠다. 하지만 자신의 디자인이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판단한 장 폴 고티에는 “다시는 아시아인을 위해서 디자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2년 뒤, 그는 중국의 여가수 이우춘의 콘서트를 위한 무대의상을 디자인했다.)


훗날 장 폴 고티에가 콘서트를 위해 준비했다는 의상의 스케치를 본 적이 있다. '점점 악마로 변해가는 천사'라는 컨셉 하에 그려진 아름답고 영감이 넘치는 스케치를 보면서, 문득 사람들에게 이 옷을 누가 입게 될 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그림만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장국영이 아닌 보통의 남자 모델이 입었다면, '사다코' 운운했던 기자조차 환호했을 작품이지 않았을까.



장 폴 고티에의 스케치와 그것을 입은 레슬리. 내 눈엔 스케치보다 그것을 구현해낸 레슬리의 실물이 훨씬 더 멋지다.



걱정을 안고 날아간 홍콩. 워낙 좋지 않은 평을 많이 읽고 간 후라 콘서트의 분위기도 다소 다운되어있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실제의 콘서트장은 축제의 현장과도 같았다. 특히 댄스곡 메들리를 부르면서는 관객들을 모두 일으켜 세워 춤을 추게 했는데, 맨 앞줄에서 공연을 본 덕분에 그 누구보다도 흥겹게 춤을 추던 나는 왜 원형무대가 아닌 정면 무대여야 했는지 깨달았다.


원형무대는 관객이 그를 360도로 둘러싸게 된다. 그래서 관객은 계속해서 방향을 바꿔가며 공연하는 그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공연을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단 한순간도 관객 전체를 동시에 바라볼 수 없게 된다. 더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무대를 굳이 포기하고 정면 무대로 바꾸고자 했던 것은, 관객들과 오롯이 마주 보며 그들과 함께 한바탕 즐기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헤아려본다.



데뷔 무대에서 불렀던 <American Pie>를 불렀다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전까지는 그 어디에서도 선보이지 않았던 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그가 이 공연을 데뷔부터 당시까지의 여정을 총 결산하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그가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에 '열정'을 담아 풀어넣고자 한 공연이 아니었을까 하고.


내 예상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의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무대였을 것이다. 1977년 대회 규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대에 섰던 열아홉 살 장국영이 23년이 흐른 후에 슈퍼스타가 되어 다시 부르는 <American Pie>라니. 


또한 곡은 팬이었던 나로서도 의미 있는 무대였다. 당시는 유튜브도 없었고, 그래서 대회 당시의 영상이 공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데뷔 무대를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 돈 맥클린의 원곡을 들어보았을 때는 장국영이 이 노래를 어떻게 불렀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기에 더욱더 반갑기도 했고. 그리고 결과론적으로는 이 공연이 장국영의 마지막 투어로 남았기 때문에, 이 무대에서의 <American Pie>는 더욱더 크게 마음에 남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xitNQi1EL1I

언제 들어도 씐나는 America Pie



자고로 열심히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을 이길 수 없고, 즐기면서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그 말처럼 레슬리는 공연 내내 무대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며 관객들과 함께 호흡했다. 때문에 그가 이끄는 대로 호흡을 죽 따라가다 보니, 그가 공연의 말미에 샤워가운을 입고서 다시 무대에 섰을 때 그의 옷차림이 완전히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한바탕 제대로 놀고서 휴식을 취하러 가기 직전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로는 그가 무대 뒤의 '아티스트 장국영'이 아닌 '인간 장국영'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샤워가운 퍼포먼스 역시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주제 중 하나였다.


“유덕화가 샤워가운을 입었대도 욕을 먹었을까? 여명이 샤워가운을 입었대도 욕을 먹었을까?”


홍콩 언론의 잇따른 비난 보도에 화가 나서 식식대는 나에게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안 그랬을 거야. 하지만 그 사람들은 무대에서 샤워가운을 입는 퍼포먼스 자체를 안 했겠지.”




샤워가운을 입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는 무척 편안해 보였다.



나는 콘서트장에 갈 때 이전 해 서울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함께 찍었던 사진을 액자에 곱게 넣어서 가지고 갔다. 팬들이 무대 위로 선물을 건네거나 할 때 타이밍을 봐서 나도 사진을 전하고 오겠다는 심산이었다. 부러 선물 포장도 하지 않고 액자만 덜렁 들고서 의기양양하게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잘 포장을 하고 그 안에 카드라도 한 장 넣을걸 그랬다 싶지만, 그때는 그게 또 나름의 멋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바탕 축제와도 같았던 콘서트에는 개인 팬이 감히 선물을 들이밀 틈이 없었다. 결국 공연이 끝난 후 그 액자를 건네받은 것은 공연의 스태프였다. 고이 들고 있던 액자를 전하며 “레슬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객석을 담당하는 스태프 중에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라 손짓 발짓으로 겨우 설명을 하고 꼭 전해달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액자가 정말로 그에게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지만 아무래도 스태프의 마지막 표정은 ‘이걸 나보고 어쩌라고’였던 것 같으니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서 찍은 사진들



결국 레슬리에게 직접 선물을 주겠다는 굳은 결심도 이루지 못했고, 그 악명 높은 청킹맨션에 있었던 숙소는 창문도 없고 밤이나 낮이나 공기가 눅눅했고, 한여름의 홍콩은 변덕스럽게 비가 오다가 해가 나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함께 갔던 친구는 여행 중에는 식사를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덕분에 여행을 가면 다섯 끼는 너끈히 먹는 나는 일정 내내 배가 고팠다. 


게다가 일정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열정’이라는 콘서트의 이름처럼 습하고 무더웠던 날씨로 기억되는 2000년의 여름, 여행으로서는 사실 최악으로 손꼽힐만했으나 내 눈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장국영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96년 <과월연창화> 이후에 목소리가 많이 상해서 내가 좋아하던 전성기의 짱짱한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 누구도 선보이지 못했던 파격적인 무대를 보여준 그에게 새삼 반했던 공연이었다. 

그리고 처음엔 왜 <열정>일까, 궁금했던 콘서트의 제목이 완전히 이해되었던 공연이기도 했다. 장국영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의 Fever(熱)와 Heart(情), 그리고 열정 그 자체가 녹여져 있는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콘서트가 그의 마지막 투어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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