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글쓰기가 좋냐 물으면

누가 삶은 이름 따라간다고 했던가. '나라를 글로 이끈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나는, 어쩌다 그토록 장엄한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늘 궁금했다. 나라까지는 몰라도, 내 삶은 이끌어 보고 싶었다.


기억이 닿는 가장 오래전부터 글쓰기가 좋았다. 글로 펼쳐지는 무궁한 세계가 참으로 신비했다. 편지를 잘 써서 부모님을 울리면 괜히 으쓱했다. 일기 쓰기 싫을 때에는 시를 지어 일기장을 듬성듬성 채웠는데, 학년이 끝날 때쯤 나의 시들을 사진 찍어 간직해도 되냐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또 한 번 으쓱해보기도 하고.




나의 첫 작가의 꿈은 12살 시절.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을 보고는 드라마 작가를 꿈꿨더랬다. 그때 쓴 일기를 오랜만에 펼쳐봤다.


남산타워를 보며 푸른 바다의 전설이 생각났다. 종영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수·목마다 준재와 청이가 반겨줄 것만 같은 여운이 남아있다. 남산타워 근처 촬영 장면이 많아서 타워가 희미해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문득 나도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 깊이 간직되는 드라마. 갑자기 가슴이 떨리고 너무나 설렜다.


9년 전 나의 일기를 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너 드라마 작가 안 됐어',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씁쓸한 위로였을까. 꿈 하나 가지고 눈을 반짝이며 일기장을 수놓았을 12살의 마음이 느껴져 슬프기도 하고.


질풍노도의 중학생 때에는 뮤지컬에 빠져 연극뮤지컬 동아리를 만들었다. 뮤지컬 '마틸다'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 3시간짜리 공연을 채우는 모습은 중2병의 나에게 영감을 주기 충분했다. 유튜브에서 뮤지컬 노래 틀어놓고 방구석 무대를 여러 번도 꾸몄다.


아무튼, 학생이 직접 꾸리는 동아리는 일정 인원수를 미리 충족해야만 했다. 온 복도를 쏘다니며 친구의 친구까지 섭외해 겨우 만들었다. 배우를 꿈꾸던 친구와, 작가를 꿈꾸던 내가 함께 만든 동아리. 매주 활동을 계획하며 진땀 빼고, 스스로 만든 대본에 연기하며 연기에는 정말 소질 없음을 느끼고. 대문자 I인 내가 영화관 대관 전화까지 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다. 아무리 내가 원해서 시작한들, 한 조직을 이끄는 건 쉬운 일이 아님을 쓰리게 깨달았다.


고등학생 때에는 3년 내내 교지 편집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어쩌다 또 회장까지 맡고는 코로나 동안 한 번도 못 뵌 교장선생님을 인터뷰하다가 체할 뻔도 했다. 별것 없는 활동에서 별것들을 찾아내 교지 분량을 채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글쓰기가 좋냐, 물으면 그래도 글쓰기가 좋다, 답했다.


그래서 지금은 뭐냐 하면... 글쓰기는 좋아하면서도 책은 안 읽는 이상한 대학생이 됐다. 방학마다 의지에 불타서 브런치에 끄적이다 만 글만 몇 개더라. 2년 전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대차게 실패한 후 괜히 의기소침해져서 글도 안 썼다. 아, 그래도 어느 방학에는 '나의 책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책을 낸 적도 있었다. ISBN도 있는 '진짜 책'말이다. 다시 읽기는 민망해서 인터넷에 검색만 해본다. '잘 있구나, 여전히 리뷰는 없구나' 생각하면서.




요즘은 생성형 AI가 참 야무져서 글도 잘 쓴다. 'AI 시대에도 창의력을 발휘하는 직업은 살아남을 거예요!' 당당히 내뱉던 나의 어린 꿈. 그 꿈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글쓰기가 좋냐, 물으면 그래도 글쓰기가 좋다, 답했다.


그렇게 나 혼자 열심히도 글을 밀고 당겼다. 애증의 글쓰기... 개강을 며칠 앞둔 지난주, 연례행사로 또 브런치에 접속했다. 그리고 나의 애증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글을 애정하는 자들과 함께 글을 쓰고 싶었다. 언제든 나에게 문을 열어준 책방, 브런치에서.


단숨에 글 한 편을 쓰고,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신청서를 냈다. 떨어질까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가슴 두근한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를 처음으로 떨리고 설레게 하던 작가의 꿈. 그 꿈의 흐릿한 초점이 조금 맞아간 느낌이 들었다. 남들이 참 좋을 때다 말하는 21살. 뭐든 해보라 해서, 진짜 뭐든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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