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생활 사이, 내가 베를린에서 배운 것들

여행자는 언제나 낯선 곳을 즐긴다. 카메라에 담을 만한 풍경과 미식, 유명한 관광지들이 여행의 목적이 된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나는 여행자도, 생활자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서있었다. 한 달 간 베를린에 머물면서 '여행자의 설렘'과 '생활자의 습관'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베를린 한 달 살이는 우연한 기회였다.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해외 대학교 계절학기 수강 지원 사업'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여행자로서의 설렘이 앞섰다. 생애 첫 유럽을, 한 달이나, 그것도 여름에라니. 아홉 시는 넘어야 해가 지고, 뽀송한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는 베를린을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베를린 돔, 브란덴부르크 문,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심지어 지역 열차를 타고 가야 하는 상수시 궁전까지. 하루 만에 유명한 관광지를 다 보겠다고 걸음을 재촉했다. 한화로 5만 원이 넘는 슈바인학센조차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으로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다. 도시가 보여주는 가장 화려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베를린 돔 / 상수시 궁전 / 슈바인학센과 맥주


하지만 계절학기 수업이 시작되고, 매일 여섯 시간씩 학교에 앉아 있다 보니 조금씩 '생활자의 시선'이 스며들었다. 마트에서 5유로짜리 소고기를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외식 한 끼 값보다 저렴한데도, 이상하게 '생활'이라는 이름이 붙자 소비가 깐깐해졌다. 매일 타는 버스 노선은 자연스레 외워졌고, 대중교통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부모 말에 "아니!(Nein!)"만 외치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만국 공통이구나', 웃픈 깨달음도 얻었다.


풍경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여행자로서 스쳐 갔을 평범한 장소에서 전쟁의 흔적을 발견했고, 인도에 박힌 작은 돌들이 유대인 희생자를 기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밤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한참을 서있었고, 강변의 펍에서 춤추는 노부부에 발길을 멈췄다. 그때마다 여전히 작은 설렘을 느꼈다.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나는 베를린의 두 얼굴을 배우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의 흔적 / 히틀러가 최후를 맞은 장소. 현재는 주차장이 들어섰다. /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는 슈톨퍼슈타인


결국 베를린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이것이다. 여행과 생활의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하다.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삶의 습관이 스며들고, 오래 사는 와중에도 여전히 낯선 설렘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의 이름을 붙이느냐가 아니라, 그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였다.


아마 떠나는 날까지도 나는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생활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배운 것은, 앞으로 다른 도시를 만날 때도 나만의 시선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