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커다랗게 자리잡은 문구. 어린 시절의 내가 읽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게 확실하다. ‘문화생활’이란 이름 하에 부모님 손에 끌려 이곳저곳 다니다 데인 적이 많았으니까.
진하게 화장해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대사도 없어서 내용까지 미지수인 발레 공연부터. 그게 그거 같은데 몇 악장씩이나 나뉘어서 더 지루한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문화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데, 나는 모르겠고. 집에서 DVD 만화나 실컷 보는 게 나한테 최고의 문화예술이야. 툴툴대는 나에게 부모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게 다 너에게 자산이야. 나중 되면 정말 감사할걸.
그렇게 부모님은 만기도 이자율도 모를 장기투자를 이어갔다. 투자의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건 중학생 무렵. 호르몬을 양분 삼아 나의 중2병이 무럭무럭 자라나던 때였다.
잉여롭게 TV를 보던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방송이 있었으니. 뮤지컬 ‘마틸다’의 공연 준비 과정을 담은 방송이었다. 문득 내 또래의 아이들이 꾸미는 무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지금껏 봐온 공연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다. 육감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건 꼭 봐야 해.
그렇게 우연 혹은 필연처럼 접한 마틸다는, 내게 문화예술의 재미를 알려준 첫 작품이 되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동화 속 이야기, 그 자리에서 그 배우와 그 관객만이 공유하는 비밀스런 시간들이 좋았다.
공연예술-특히나 뮤지컬을 향한 나의 외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연극뮤지컬 동아리를 만들지 않나(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용돈이 모이는 대로 뮤지컬 티켓에 태우질 않나. (이즈음부터 부모님은 당신들의 투자가 과하게 하이리턴임을 깨달았다.) 지구상에 한계효용이 체감하지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뮤지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예술의 현장감, 그 순간에만 살아 있는 경험이 좋았다. 같은 배우의 공연이더라도 표정과 말투, 몸짓이 완벽히 같은 공연은 없다. 특히나 마틸다나 빌리 엘리어트처럼, 시즌마다 주연 배우가 바뀌는 공연에서는 그 현장감이 더욱 강렬해진다. 단 한 번의 시간을 함께한다는 감각이 특별했다.
최근에는 그 감각을 미술관에서도 발견했다. 무대의 살아 있는 호흡이 미술관의 정지된 작품에서도 이어진다는 걸 알았다. 작품 가까이 다가가 붓의 결과 물감의 흔적을 들여다볼 때, 작가가 작업하던 순간과 나의 현재가 겹치는 듯했다. 공연과 회화, 무대와 미술관. 겉보기에 달라도, 순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었다.
초콜릿 상자와 같은 예술의 즐거움을 하나씩 알아가는 요즘.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나는 이제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