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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학

절묘한 타이밍

by my little cabinet

남편이 유학생활을 시작하며

나도 모르게 스스로의 포지션을 세팅했다.


'우리는 유학을 왔고,

네가 먼저 공부를 하기로 했으니...

나는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서포트 하마.'


이런 마음 이면에는

'내가 공부를 할 때는 얘도 날 도와주겠지?'라는

기대가 있기 마련 아닌가?

이렇게 먹고 튈 줄 누가 알았겠나.


남편의 석사과정은 2년이었다.

느지막이

게다가 많은 준비 없이 오른 유학길이

우리 둘 모두에게 버거웠다.

어찌 됐든 살아남기 위해

없는 손도 만들어 보태야 했다.


이미 시작했고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그 시간을 잘 보내야 했다.

드로잉도 돕고, 논문 자료도 찾고

졸업발표에도 함께 발을 동동 굴렀다.

한 팀이라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도 의문이다.

졸업장에 내 이름 넣어주는 것도 아닌데,

난 왜 그리 열심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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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이나, 생활적인 면에서 오는

다름은 예상했기에 온몸으로 견뎠다.

못 알아듣고 딴 소리 하기는 기본 중 기본!


너무 비싼 물가에

장 볼 때는 항상 머릿속에 숫자들이 둥둥 떠다니고

버스 값 아끼겠다고 걷고 또 걷던 시절이다.


생각지 못했던 가장 큰 벽은

학업을 대하는 '태도', 사고하는 '방식'이었다.

새롭게 생각해야 했다.

꾀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도 나름 공부도 고, 현장경험도 있.'는

그런 어쭙잖은 마인드를 버리는 게 힘들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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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석사 과정 시작되었다.

'신랑이 내 논문자료도 찾고 많이 도와주겠지???'

라고 기대하던 순간.

신랑이 취업을 했다.

그것도 일 많기로 악명 높은 회사에.


다 우리가 함께 세운 계획이었고,

함께 지나온 시간이지만...

뭔가 억울하다.


다만, 좀 위로가 되는 건

눈동냥 귀동냥으로 2년을 보내며

영국살이에 감이 쌓였다는 거였다.


나는 유학생으로써

영국교육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써야 할지가 분명했다.


첫 학기를 보내고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논문학기를 앞두고

나는 아이를 가졌다.


수업시간에 입덧을 하고,

부르는 배를 토닥이며 논문을 썼다.

논문을 제출하고 2개월 뒤, 나는 출산을 했다.


왜 내 인생의 타이밍은 이렇게 절묘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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