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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웨딩 티

by 박수진

ⓒ 작은 숲 (박수진)




흰 레이스로 수 놓인 웨딩드레스를 닮은 티백을 물에 담그는 순간, 찬란히 피어오르는 향. 내 앞에 놓은 것은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랜드 웨딩 티 블랙 티.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치 우아한 결혼식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적당한 온도의 물에 티백을 천천히 적시며 향기를 느낀다. 그리고 상상이 덧붙는다.

고급스러운 샹들리에 아래에서 펼쳐지는 은은한 피아노 연주,

정성껏 준비된 플로랄 테이블 세팅,

그리고 손끝으로 살짝 들어 올린 차 한 잔의 기품.


차에 입술을 가져가니 부드러운 블랙 티의 깊이가 느껴진다. 홍차의 진한 향에 파인애플과 마리골드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감미로운 연회가 열린다. 혼자 마셔도 결코 혼자가 아닌 기분. 맛과 향은 마치 나 자신을 위한 작은 결혼식처럼 특별하다.


한 잔의 차가 주는 기쁨은 바로 그 순간에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찻잔을 마주할 수 있는 그 시간. 그랜드 웨딩 티는 이름만큼이나 고급스러운 사치를 담고 있다. 그 사치는 화려하거나 거창한 것은 아니다. 특별한 날에만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특별함은 일상 속 아주 조용히, 찻잔 속에 스며드는 평화에서 비롯된다.


차를 마시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얼마나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를.. 차를 마실 때면 나는 잠시나마 모든 일상으로부터 벗어난다. 차의 따뜻함과 향기가 내 몸과 마음을 감싸며 천천히 흘러드는 순간. 그 순간에 스며드는 나만의 시간, 나만의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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