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건 설레고 떨리는 일이다. 사랑하는 아빠가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 슬픔을 견디지 못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을 쏟아내는 일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올해 1월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4월에는 좋은 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선 소식까지 받았다.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었다. 글쓰기가 내게 건넨 작은 선물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에 놓인 하나의 여정 같았다.
며칠 전에는 예기치 못한 선물도 찾아왔다. 아이폰이 자동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음악과 함께 흘러나온 건 내가 애써 외면했던 아빠의 사진들이었다. 응급실에 누워 계시던 모습, 암 병동에서의 나날, 마지막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장면들까지, 그 사진들은 내가 끝내 직면하지 못한 아픔이었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다고 스스로를 속여왔지만, 그날의 아이폰은 아빠를 다시 내 앞에 데려놓았다.
화면 속 아빠는 병원 침대에 누워 계셨지만, 어떤 사진에서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아빠의 미소를 보자 가슴이 메어왔다. '살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던 아빠의 눈물, 응급실을 향해 달리던 발걸음, 췌장암 4기 진단 앞에서 무너져 내리던 가족들의 얼굴, 끝내 나를 걱정하시던 아빠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암 병동의 복도는 왜 그렇게 길었을까, 영상 속 아빠는 아무 말도 없지만, 여전히 나의 눈물이 대신 이야기를 이어갔다. 병으로 지쳐가는 몸을 이끌면서도 끝까지 딸을 생각했던 아빠의 삶, 그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결국 나는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더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에서는 고마움이 일었다. 다시는 꺼내 볼 용기가 없을 것 같던 사진들을 통해 잠시나마 아빠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라는 걸 알았다. 글을 쓰는 것, 글만이 눈물과 아픔, 그리고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었다.
아빠는 평소 책 필사를 즐기셨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옮겨 적으며 마음을 다스리셨다. 그 시간은 아빠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그런 아빠 곁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 작가의 꿈은 그렇게 아빠에게서 나에게로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은 결코 혼자의 것이 아니다. 아빠가 남긴 마음과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우리 두 사람의 꿈이다.
글은 내 마음의 파편을 모아주는 힘이자 흩어진 감정들을 하나로 묶고, 복잡한 생각들을 풀어내며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갔다. 때로는 글이 상처를 건드려 아프게 했지만, 또 어떤 날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글은 나만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상에 내어놓는 순간,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과 연결된다. 내 글이 다른 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하루의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유만으로도 글을 이어갈 수 있다.
데니스 우드의 책 '모든 것은 노래한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각각의 지도는 보이지 않는 것,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 하찮아 보이는 것에 눈을 맞춘다."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순간이라도 기록되는 순간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다시 나의 글이 된다. 글은 내 안의 마음을 따라 나만의 지도를 그려가는 작가가 되는 과정이다. 브런치스토리 위에는 내가 걸어온 흔적과,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꿈이 함께 새겨질 것같다. 글은 나를 지켜주고, 나를 이끌며 삶을 빛나게 한다. 그리고 글 속에서 나는 아빠를,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만난다. 그것이 내가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