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돈을 안쓰려고 해도 쓰게 되는 시간이다. 땡스기빙에서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시즌. 사두려고 했던 물건들이 있다면 일 년 중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이다.
이제는 부엌 용품도 얼추 다 갖추었고, 전자 제품도 다 있다. 더 이상 급하게 필요한 것은 없다. 그릇들이 좀 부족하지만 없어서 못 살 정도도 아니다.
2021년엔 집안의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우리 안의 미세 플라스틱이 온갖 성인병의 주범이자 신경계 교란의 원인이라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BPA 프리 제품들은 써온 편인데, 그것부터 줄이려고 한다. 얼마 전 꾸스의 플라스틱 컵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경악했다. 오래된 플라스틱 특유의 꾸덕꾸덕한 냄새랄까? 진즉에 꾸스의 컵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것만 쓰고 있었지만, 선물받은 플라스틱 컵을 포함해서 외출용으로 단 두개의 플라스틱 컵이 남아 있었다. 리사이클을 하기로 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컵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도 안쓰는 플라스틱 컵을 아이에게 그간 줬다는 것도 뭔가 웃기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다 플라스틱 봉지나 컨테이너에 담겨 있다. 조금씩 플라스틱이 스며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말그대로 파머스 마켓에 가서 직접 내 바구니에 담지 않는한 피할 길이 없다. 유난 같아도, 작은 습관들이 모여 평생의 건강을 보이게 안보이게 결정할 것이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집에 있던 모든 컨테이너 역시 이번에 유리로 바꾸기로 한다. 전부터 소망했는데 연말이 되니 가격도 저렴해졌다.
그런데 가장 마음에 남은 구매 기록은 이것이다.
포스터 케어에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카시트와 기저귀, 속옷들을 사서 기부했다. 포스터 케어는 위탁 가정이다. 미국에는, 갈 곳 잃은 아이들이 포스터 케어 시스템에 들어간다. 어떤 이유에서건 더 이상 집이 안전한 곳이 아닌 아이들이 들어가게 된다. 부모가 학대를 했을 수도 있고 마약을 했을 수도 있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자원해서 포스터 부모가 되기로 한 사람들이 일정한 자격 심사를 거친 후, 급하게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생겼을 때 위탁 부모가 되는 것이다.
포틀랜드는 특히나 미국 내에서 위탁 가정의 부족함으로 버려진 아이들이 갈 곳이 없는 위기의 주에 해당한다. 연말에, 꾸스 또래의 아이를 가진 가정들을 도우려고 살피다가, 현금 기부보다 웬만하면 물건으로 직접 돕는 방식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단체가 포틀랜드의 위드 러브 (With Love). 0-7세 사이 아이들을 맡는 포스터 부모들에게 직접 새 물건을 사다줄 수 있게 아마존 레지스트리가 있다 (아마존의 순기능?).
갑자기 자기 집에서 내몰려진 아이들은 입고 나온 옷 신발 하나가 가진 것의 전부일 때가 많다고 한다. 아기를 맡게 되는 경우 기저귀가 부족해서 기저귀를 다시 빨아 써야하는 위탁 부모도 있다고 한다.
꾸스 또래 남자 아이가 자기 속옷 하나 없을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너졌다. 실제로, 한 미혼모 가정의 아이가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를 살펴 보고 있었는데, “새 양말”이 받고 싶은 선물이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가 된 후 이 세상의 아픈 아이들, 학대에 내몰리거나 먹을 것이 부족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자주 무너진다. 2020년 가장 잘 쓴 돈이라고 생각한다. 찾아보니 집 밖으로 내몰린 여성과 아이들이 임시로 거처하는 곳들도 많았다. 올해 가을, 한창 추워지던 때 페이스북으로 한 여자가 두살 아들이 있다며 두 살 남아 옷을 도네이트해줄 사람이 있냐고 묻고 있었다. 가정 폭력으로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이었다. 그는 곧 사람들이 도와 임시 쉘터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그녀에게 꾸스에겐 작아진 옷들을 모아서 기저귀 한 박스와 가져다 준다는 것이 이래저래 미루다 실행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연말엔 다시 나섰다. 직접적으로 위탁 부모가 될 그릇은 아니지만,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것, 그리고 With Love에서 코비드로 인해 가장 추운 겨울임에도 올해 가장 도네이션이 많이 들어왔다며 올라온 기저귀, 장난감, 옷 사진들을 보니 그래도 맘 한 켠이 따뜻하다. 추운 아이들이 없었으면, 배곯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시스템을 악용하는 위탁 부모 또한 절대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