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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마르스 Jul 15. 2021

잠들지 않는 귀 -  김행숙

2021 시필사. 176일 차

잠들지 않는 귀 -  김행숙 


  1

  안녕, 어느 여름날의 서늘한 그늘처럼 나는 네게 바짝 붙어 있는 귀야. 네가 세상 모르게 잠들었을 때도 나는 너의 숨소리를 듣고, 너의 콧소리를 듣지. 네가 밤새 켜두는 TV에서 느닷없이 북한 아나운서의 억양이 높아졌어. 이 모든 것이 공기의 진동이야. 그리고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렸어. 이런 밤중에 종을 치는 사람은 누굴까. 나는 너를 파도처럼 흔들어 깨우고 싶어. 


  2

  어느 날은 늙은 어머니가 네 방으로 건너와서 40년 전 어느 젊은 여자의 어리석음에 대해 한탄했네. 여자는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움을 자신에게 이롭게 사용할 줄 몰랐네. 잘 자라, 가엾은 아가야. 이 모든 것이 화살이란다. 너는 잠든 척했어. 나는 너의 숨소리를 듣고, 너의 숨죽인 비명을 듣고, 늙은 여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는 소리를 들어. 그 날 나는 너의 침묵을 이해했지. 너는 나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구나. 이 모든 것이 그냥 지나가길 빌었어.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죽었어. 


  3

  어디선가 제 가슴을 치는 사람이 있고 어디선가 제 주먹이 깨지도록 벽을 치는 사람이 있겠지. 내가 듣지 못하는 소리들이 어디선가 공기를 울리고 있어. 내게는 들리지 않는데 너에게는 들리는 소리들을 상상해. 네가 나를 게걸스럽게 잡아 먹는 꿈을 꿔. 나는 너를 높은 파도처럼 집어 삼키고 싶어.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이 모든 것이 공기의 충돌이야. 이 모든 것이 행성의 충돌이야. 벽을 치는 사람에게는 벽에 세워두고 싶은 그, 그 사람이 있어. 피부를 찢고 피가, 피가, 피가 났어. 이 모든 것이 파편이야. 


  4

  또 어느 날은 네가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고 있지. 혼자 하는 말은 혼자 하는 생각과 얼만큼 비슷한 걸까. 나는 말벗이 될 수 없구나. 대신 비밀이 되어줄게. 나는 아무도 모르게 커져서 먼 훗날 너를 품에 안고 고요하게 폭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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