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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Nov 27. 2016

그 여자 이야기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


 한 여자가 있었다.


 어릴 적 부유했던 집안의 막내딸이자 고명딸이었던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고 자랐다. 딸의 손에 물 한 방울도 허락치 않았던 그녀의 어머니는 세상 물정 몰라도 그저 딸이 곱게만 자라주길 바랐다. 어쩌면 그 땐 세상 풍파를 다 막아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충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던 무렵, 평생 부를 누리고 살 줄 알았던 그녀의 집안에는 온통 빨간 딱지들 투성이었다. 보증을 잘못 섰던 그녀의 아버지가 원인이었다. 모든 게 원망스럽고 무서웠던 그녀는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 누구도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다 그녀는 우연히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매일 처절한 가난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스스로의 감정조차 억제하면서 살아야했던 냉철한 남자를 만났다. 살기 위해 공부를 했던 그 남자는 예술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그녀는 자신이 존경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춘 이상형의 그를 뼛속 깊이 사랑했다. 빼어난 미모의 그 여자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남자도 기어코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둘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미치도록 사랑했기에 결혼을 선택했다.


 하지만 남자의 집안에선 여자의 집안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기울어진 가세에 변변치 못 한 집안의 딸과 결혼하기에는 명석한 아들이 너무나 아까웠을 터. 그렇지만 그 둘은 쥐도 간간히 기어나오던 단칸방에서 살림을 차렸고 더 나은 미래를 꿈 꾸며 열심히 살아갔다.


 시집살이는 예상된 일이었다. 보통 성격들이 아니었던 시누이들과 시어머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녀의 만성두통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남자는 하필 지나치게 효자였고,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다. 없는 살림에도 교육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주었던 유일한 존재이기에 마음의 빚을 갚을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다.


 여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야만 했다. 능력있는 남자와의 결혼이 지옥같은 인생에 유일한 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댁은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곳이었고, 가끔 몰래 찾아오던 친정어머니가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다.


 남자는 일 때문에 지방으로 가는 일이 잦았고 그럴 때면 아기를 핑계로 친정에 갈 수 있었는데, 다 쓰러져 가던 집이라도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조촐하지만 따뜻한 밥상을 차려놓았고 혹여 딸이 고뿔에라도 걸릴까 아랫목을 따뜻하게 해놓는 걸 잊지 않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결혼을 선택해서 그런 것일까.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의 지극한 효심도 신물이 났지만, 늘상 가르치려드는 남편의 냉정한 말들이 삶에 전혀 위로가 되어주지 못 했다. 남자도 역시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한 탓에 하루하루 고된 일을 하는 게 버겁게만 느껴졌고, 자신의 몸이 아프다 보니 책임져야할 생계가 지긋지긋해 지고 있었다.


 숱한 밤을 싸웠고, 갈라 서고 싶은 마음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서글퍼서 매일 울던 그녀였다. 경제적 능력이 없음에 초라해졌고, 자괴감마저 들었으며, 남편을 향한 자격지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모든 비난의 화살을 다 받아낸 남자 역시 여자의 모든 것에 질려가고 있었고, 서로 웃는 얼굴로 마주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안 날만큼 냉대하게 되었다.


 자신의 친정이 짐이었던 그녀는 남자를 떠날 수도 없었다. 모든 걸 남자에게 의존했던 자신이 밉고 싫었지만, 자신들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던 오라버니들의 무능력에 더 치가 떨렸다. 실상 그녀는 오래 전부터 소녀 가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의 아버지는 당뇨와 신장병을 앓고 있었고,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한 쪽 귀가 멀었다. 새 보청기라도 하나 해드리고 싶은데, 친정부모님을 위해 뭐라도 하려면 늘 남편의 눈치를 봐야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십년이 지나 겨우 시집살이에서 벗어났고, 몇 년 뒤 호랑이보다 무서웠던 시어머니는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그 사이 너무도 먼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의 방향이 너무나 다르다고 느꼈다. 사랑은 했던 것일까, 회의감마저 무뎌져버린 두 사람은 더 이상 서로에게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친정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겨진 친정어머니는 치매를 앓았다. 모시고 살기도 해봤지만 남편도 친정어머니도 서로가 너무 불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냉정함에 정이 떨어졌고 어머니를 차라리 마음 편하게 요양원으로 모셨다. 자주 찾아 뵙기엔 조금 먼 거리였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좋아하던 자연이 어우러진 위치에 덩치는 컸어도 어르신들께 정답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진돗개도 여러 마리가 있었던 덕분인지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불심이 깊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염주를 돌리며 반야심경을 끝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늘 사랑하는 딸을 위해 기도했고 또 기도했다. 부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딸과 사위가 무탈하게 건강하기를, 하나 뿐인 손녀가 좋은 남자를 만나기를. 친정어머니의 소원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그녀의 삶은 불구덩이 속에서 빠져나갈 틈이 어디인지 찾을 수도 없을만큼 괴로운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다 큰 딸이 오랜 시간 우울증에 시달려 약을 먹고 자살 시도까지 하기에 이르렀고, 늘 전전긍긍하며 잠도 깊이 잘 수 없었다. 불면증은 고질병이 되었도 신경안정제로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지 못 한 그녀는 한 없이 눈물이 났고,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상실감이 컸다.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아무리 한 사람은 이성을 잡고 있어야 한다지만 남편은 차갑다 못 해 무관심해 보였다. 여차저차 장례식을 치뤘고,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이 하염 없이 흘렀다.


 살다 보니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남편이 큰 병에 걸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차후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삶에 등대같았던, 어쩌면 아버지를 대신한 존재였던 남편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다 늙어버린 남편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다.


 퇴원 후 그녀는 남편의 재활에 힘썼다. 매끼 자연식을 준비하며 일주일 식단을 짰고 그에 따라 유기농 재료들로 꼼꼼하게 장을 보았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으며 그간 생계를 책임져왔던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정성스레 병간호를 하였다.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갈 때쯤, 그녀의 몸은 반대로 병들기 시작했다. 남자가 나아가니 이번엔 그녀의 차례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수술은 두려웠지만 그녀의 남편은 한시도 떠나지 않고 그녀의 곁을 지켰고, 본의 아니게 서로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시간들을 갖게되었다.


 그렇게 심신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아무 조건 없이 바라본 적은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딸도 조금은 정신을 차렸는지 재수를 끝으로 대학에 합격했고, 철 없던 건 여전했지만 공부라는 걸 하려고 애쓰는 듯 해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투기도 많이 다퉜지만 인연의 끈을 끊어낸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것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유 모를 감정소모는 시간낭비라는 것도 살다보니 깨닫게 되었고, 치열한 싸움은 결국 상처만 남기고 끝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가끔 감정의 앙금이 남아서 스스로를 괴롭힐 때가 오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서로를 회유해 보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의지할 데라곤 둘 밖에 없으니 여행은 두 사람에게 뜻밖의 소득을 주기도 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인생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행복한 지, 불행한 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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