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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Nov 24. 2016

잔인한 순수

왕따 인생 - 1



 가장 안전했던 엄마 뱃속을 떠나 세상의 빛을 온 몸으로 떠 안으며 첫 숨을 들이마셨던 아기- 3.8kg의 우량아로 태어나 엄마를 꽤나 힘들게 했을 것이라 추측하는 그 아기는 벌써 성인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당시 여자 아기치곤 상당한 몸무게를 자랑했고, 빼어나게 굴곡졌던 몸매는 미쉐린타이어 캐릭터인 '비벤덤(Bibendum)'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었던 나는 점점 비만아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 인해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던 건 유치원 때부터였다.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 꺼려했다. 뚱뚱한 체형에 수줍음을 타기 일쑤였으니 만만해보였다 해도 부정할 순 없었다.


 뚱뚱하고 말 수가 적어서,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줄 모른단 이유로 무시를 당해야만 했던 나는 영문도 모른채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씹히고, 뜯기고, 괴롭히는 맛이 나고, 그로 인해 즐거웠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씁쓸하다. 잔인한 순수함을 무기로 누군가를 칠흑같은 어둠 속에 매일 가둬두었다니. 미끄럼틀 가장 마지막 순서를 애타게 기다렸던 나를 밀쳐서 떨어지게 만들고. 아직도 한 쪽 눈은 그 때의 상처를 간직하듯 웃을 때 약간 안 쪽으로 패인다.


 마지막 재롱잔치에서 인디언 장식을 두르고 남녀가 짝을 이뤄 춤을 췄을 때도 나와 짝을 이루었던 남자 아이는 덩달아 놀림거리의 대상이 되었다. 돼지와 짝이 되었다고. 나는 멍청했던건지, 그저 수줍게 웃기만 했던 모습을 끝으로 그 시절의 기억은 끊겼다.


 일곱 살인데도 이미 약아 빠진 애들은 어른들이 상대하기에도 보통내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를 끝으로 양천구 목동으로 전학을 갔다. 이사를 참 많이 다녔어서 그런지 익숙한 장소나 추억의 공간이 내겐 남아있지 않다. 새 학교에서는 한자 공부를 참 많이 시켰다는 기억이 1/3 정도 차지한다.


 그 학교를 다녔던 4학년 때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뜯는 게 습관이었던 내 앞자리의 여자아이가 내게 준비물이며, 숙제며 모든 걸 다 요구하곤 가로챘던 게 생각난다.


 그리고 당시 우리 반엔 정신 지체 장애우 두 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옆 자리에 앉는 걸 꺼려해서 한 명이 내 짝꿍으로 앉게 되었다. 나는 그 장애우가 정말 좋았다. 그 아이는 굉장한 한자 천재였는데 나는 장난도 치며 한자도 배울 수 있어서 즐거웠다. 모르는 한자를 물어보면 단숨에 대답해줘서 내겐 걸어다니는 옥편같은 존재였다.


 한편으론 끼리끼리 논다며 손가락질 했던 그 여자아이를 비롯한 반 아이들의 비웃는 소리가 희미하게 귓가에 맴돈다. 참 사악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는 이렇듯 받은 사람만이 기억할 뿐, 가해자들의 기억 속에 나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을텐데.


 한 번은 반에 어떤 아이가 강아지를 무료

분양한다며 나와 다른 여자아이를 함께 불렀는데, 애석하게도 한 마리 밖에 없다면서 둘 중 한 명이 알아서 키우라고 했다. 은색 빛이 감도는 검은 털의 강아지는 슈나우저 믹스견이었는데 눈망울이 너무나 예뻤다.


 동행했던 여자아이와 함께 우리 집에 데려와서 뭣도 모르고 내가 쓰던 베이비 샴푸로 같이 씻기고, 엄마가 빨리 집에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 친구는 자기가 데려가겠다며 화를 냈고, 급기야 나보다 먼저 가족들의 허락을 받고 오겠다며 나가버렸다.


 그 때처럼 그렇게 무언가를 갖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외출 후 집에 들어 온 엄마에게 나는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은 마음에 약간 떼를 썼던 것 같다. 처음엔 반대를 했던 엄마가 새끼 강아지를 계속 바라보며 인연인건가 느꼈는지 동물병원에 데려가 진찰을 받게 하고 예방접종까지 맞힌 뒤 필요한 물품을 사서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도 정이 들면 나중이 힘들 거라며 처음엔 반대했지만, 이내 별 말 없이 찬성했고 그렇게 '다롱이'라는 이름까지 지었다.


 감감무소식이었던 그 여자 아이는 며칠 뒤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너네 집으로 당장 자기 언니와 함께 찾아갈테니 강아지를 내놓으라며 씩씩거렸던 그 여자아이는 십여 분이 지나서 정말 우리 집 앞에 서서 여러 번 벨을 눌러댔다. 그 언니는 학교에서도 무섭다고 익히 알려졌기에 나는 침이 바짝 말랐다. 엄마는 볼 일이 있어 나간 상황이었고, 나는 뺏길까봐 두려워서 강아지를 방 안에 숨기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너무나 매서운 눈으로 나를 제압하며 강아지를 달라고 두 자매가 쏘아붙였는데, 나는 꿋꿋하게 버티며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고 키우게 됐다며 엄마가 곧 집에 오실거라고 했다. 그래도 큰 덩치였던 내가 버티고 버텨서 두 사람의 발걸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고, 나는 얼마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다롱이는 그렇게 우리 가족과 9년 정도 함께 했고, 불치병이 들어 구름다리를 건넜다.

 

 난 그렇게 첫 번째 친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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