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낭만
드라이브에 남아있는 과거 사진, SNS에 기록된 학창 시절,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의 고전 TV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낭만을 추억한다. 지금의 낭만적인 순간을 디지털 기기의 음악이나 영상으로 더욱 극대화하기도 한다. 알고리즘에 의해 이름 모를 누군가의 낭만적인 순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지난 5년간의 대한민국 유튜브 검색어 TOP 50에 '무한도전'이 들며, 고전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2025 복고(레트로) 문화 및 명작 콘텐츠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명작(고전) 콘텐츠를 시청한 경험이 응답자 중 71.6%에 달했으며, 이러한 복고 문화는 과거의 익숙함을 통해 정서적 위안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디지털이 낭만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지만은 않는다. 디지털 속 낭만은 흐릿한 기억이 아닌 선명한 기록이 되기도 하며 몰입의 순간에 개입하기도 한다. 소통과 공유로 이어진 단절은 혐오와 비교를 더욱 쉽게 만들었으며,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해프닝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가 아닌 현실의 걱정과 고민의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여유가 사라진 지금의 삭막한 사회를 보며 '낭만 없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늘 그랬듯 언제나 낭만은 있다. 단지, 예전의 낭만과 지금의 낭만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낭만의 모양새와 그 정도가 다른 것뿐이다. 지금의 편리와 효율이 자칫 낭만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아직 장밋빛 회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성비를 중시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의도적 불편을 동반한 아날로그적 재현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낭만을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과 그 감정을 느끼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영향력이 커진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반드시 아날로그의 불편과 불완전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낭만을 꺼내 보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에도 효율을 찾는, 낭만적이지 않지만 그게 바로 낭만인 '효율적인 낭만'의 시대이다.
설령 낭만 하나 없는 AI로 제작한 콘텐츠라 할지라도 그 숨결을 불어넣었을 때의 감흥은 또 다를 것이다. 물론 개연성 없거나 과한 억지 스토리텔링이 동반되면 '감성팔이'로 반감을 살 수 있다. 감성적인 배경음악만 추가하여 낭만을 억지로 강요하는 여느 콘텐츠처럼.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AI가 아무리 인간의 자리를 대체한다고 한들 낭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낭만을 치열하게 지킬 것이다. 현장 공연과 실시간 스트리밍 중계, 손 편지와 모바일 편지, 필름 카메라와 모바일 카메라처럼.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낭만이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빈틈을 갖고, 그 빈틈만큼은 낭만으로 채울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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