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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CAEL Jan 17. 2023

포르투갈이 좋은 이유

느림의 미학을 배우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스페인과 접해있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험한 대서양과 마주보고 있는 유럽의 서쪽 변방에 위치한 나라, 포르투갈. 

 1143년, 수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고 있던 무어족을 축출하고 레옹-까스띠야 왕국으로 대표되는 강대한 스페인 영토로부터 독립한 이후 포르투갈은 서서히 영토와 힘을 넓혀가기 시작하다가 15세기에 들어서 찬란한 대항해 시대를 열게된다. 

 이후 후발주자로 제국주의를 떨치며 영토확장에 끼어든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과 네덜란드에 의해 그 힘이 빛을 잃어 지금은 그저 서유럽의 조용한(어쩌면 심심한?)  국가로 남았지만, 그 때의 영광은 많은 포르투갈인들의 자부심이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각 대륙에 널리 퍼져 약 3억명의 인구가 사용하게 된 포르투갈어는 자랑스런 선조들이 남긴 하나의 유산이다. 물론 그러한 제국주의를 앞세운 영토 확장에 있어서 브라질 노예문제와 같은 비윤리적인 실태가 많았고, 이와 같은 측면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비판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인구 천만의, 영토도 한반도보다 작은 나라에서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했다. 그러면 꼭 뒤따르는 질문이 있다. 

"왜 하필 포르투갈어를 선택하셨어요??"

이에 대한 답변은 취업을 위한 면접용과 진실로 나뉘는데, 진실을 말하자면 정말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했다. 

 당시 반수를 하고 새롭게 대학을 고민하던 내 나이 20살, 미래를 예측하기엔 난 부잣집 막내아들이 아니었고, 이성보단 호기심이 뇌를 지배하던 때였다. 이미 현역시절 몽골어과를 지원했던 이력이 있는 만큼 난 이색적인 외국어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외국어를 너무 좋아했기에 외국어대학에 가고싶었고, 흔하지 않은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었다. 

 마침 주변에 포르투갈어과에 이미 입학한 친한 누나가 있었고, 왜 그랬는 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친한 사람이 있는 과가 낫겠다 싶은, 너무나도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생각이 원서를 제출하게 했다. 당시엔 사소해보였지만 결과론적으로 그 때의 선택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큼 중대한 순간이었다. 


 난 포르투갈이 너무 좋다. 아직도 포르투갈이라는 단어를 책이나 온라인에서 접하면 가슴이 뛰고, 사진첩에서 과거의 사진들을 볼 때면 그 때 느꼈던 감정, 냄새, 풍경이 4D처럼 느껴져 깊은 향수에 잠기게 된다.

 1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난 포르투갈의 언어, 날씨, 사람, 문화, 도시에 매료되었고, "무엇이 그렇게 좋았느냐"라고 묻는다면 몇일 밤낮을 새워 말해줄 수 있을만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너무나 순수했던 사람들과의 만남, 난생 처음 관광가이드와 통역으로 일해보기 위한 도전들, 사업까지 생각했던 나의 열정, 새롭게 가지게 된 사진촬영이라는 취미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포르투갈 전역을 뽈뽈뽈 걸어다녔던 나의 발자국과 재밌었던 경험들을 몽땅 풀어놓고 싶지만 오늘은 내가 포르투갈을 사랑하는 한가지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바로 '시간을 대하는 태도'이다.




 느림의 미학, 커피 한잔의 여유, 슬로우 라이프. 

 문명화 시대에 모든 기기들이 스마트화 되고 이에 맞춰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우리네 삶은 편안함과 안락함 속에서 효율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발맞춰 빠르게 산업화를 추진해 온 한국사회는 하루가 멀다하고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가 견뎌내야 할 삶의 속도 또한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단체관광객들을 주로 상대하는 외국버스기사들이 가장 빠르게 익히는 한국어가 "빨리빨리"라는 것을 봤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적응되어 살아갈 때는 시간의 상대성을 알지 못한다. 느리게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고, 또한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포르투갈에선 모든 하루의 시작을 커피 한잔의 여유로 시작할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도 모닝커피를 많이 마시더라). 그 한 잔에서 나는 진정한 여유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나의 삶 또한 서서히 고유의 속도를 찾아가게 되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행동이 느려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타인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 아닌, 나의 순간순간에 집중한다는 의미가 된다. 


포르투갈인들의 일상음료 café(까페)


 포르투갈 사람들의 하루는 작은 잔에 담긴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Café(까페), 즉, 에스프레소로 시작한다. 기계의 추출압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포르투갈의 커피는 자국민들 스스로 인정할 만큼 맛이 좋다. 1500년 드넓은 브라질 대륙을 발견한 이래 원두를 포르투갈로 많이 들여와 오랜시간 공정기법을 포르투갈식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인지 자국 원두브랜드들도 다양하고 커피 종류 또한 선택의 즐거움이 있다. 평소 아메리카노만 먹었던 나도 지금은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실 정도로 중독성 있는 맛이다. 


 까페의 테라스에서든, 테이블에서든 삼삼오오 모여 에스프레소 한잔에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들의 얼굴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느긋한 여유가 엿보인다. 천천히 작은 잔을 비우고 나서는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는데, 절대 서두르거나 뛰는 법이 없다. 까페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학교에서도 기다림의 미학을 즐길 수 없다면 포르투갈에서의 삶은 지루하거나 스트레스가 가득한 일상일 것이다. 


 한 예로 한달 정기교통권을 끊기 위해 지하철역사로 가서 서류를 작성한 뒤에 제출을 하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기약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대기자가 아무리 많아도 담당자는 자신의 업무가 끝나거나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를 도와주거나 하는 경우 없이 퇴근을 하거나, 식사를 하러 간다. 우리나라의 경우였더라면 업무창구를 더 열어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려고 했을 것이다. 

 처음 이러한 경험을 했을 땐 나 역시 이런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의아하면서도 느린 업무처리에 대해 비난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이들은 자신이 일한만큼 휴식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되는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들 역시 앞 선 사람의 느린 업무처리를 비난하지 않고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며 묵묵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포르투갈 사람들 스스로 "뽀르뚜기스 타임(Portuguese time)"이 있다고 한다. 정시에 약속을 잡았다면 그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시간맞춰 도착을 한다던지, 최소한 10분 정도 먼저 도착하는 것이 예의이자 관습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개념이다. 

 물론 비즈니스업무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지각은 용납되지 않지만,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일상적인 만남에서의 지각은 충분히 용인되고 그럴 수 있는 일이 된다. 이는 타인의 시간을 가벼이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니며, 타인과의 약속을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뛰다가 다치거나 무엇인가를 놓고 나오는 일이 생기지 않게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러한 행위는 게으른 자의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고, 무례한 행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시간관념에 익숙하지 않았을 적엔 불평도 많이 했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점점 이 시간적 개념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사람과의 약속이나 일정들을 중심으로 나의 생활이 맞춰지는 것이 아닌, 나의 생활 속에서 그러한 약속들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가방에 항상 책 한권이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노트를 챙기는 습관이 생겼고, 조급함이 사라지다 보니 그 동안 눈길을 주지 못했던 일상의 풍경과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해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묵혀두었던 오래된 DSLR로 사진을 찍어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취미라던가,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는 등의 활동은 그러한 여유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 이후에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일상의 사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글로 접할 때는 알지 못했던 생소한 개념들을 몸소 느끼고 있다. 




 '비긴어게인', '짠내투어' 등 많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의 배경으로 사람들의 입소문에 오르면서 차츰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그 인지도는 프랑스나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낮다. 하지만 꾸준히 관광객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는 1인으로써, 코로나가 좀 더 잠잠해진 이후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코리안타임에 맞춰져 있던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 뽀르뚜기스 타임에 맞는 여행을 즐기며 맛있는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을 느끼는 여유를 얻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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