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해진다는 건 무엇일까.
올해 안에 소진해야 하는 연차가 있어 휴식도 취할 겸 오랜만에 내려간 본가에서 퇴근한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의견 차이가 생겨 불편하고 속상한 감정을 여과 없이 뿜어내고 말았다.
찝찝한 대화 후에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엄마의 노력을 알면서도 그날은 내내 굳은 표정으로 엄마를 대했다.
다음 날, 계속 신경이 쓰이셨는지 점심시간에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몇 마디 안부를 나누고 전날의 나의 태도를 사과했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스스로의 행동이 후회되고, 짧은 식견이 속상했다.
늘 이런 식이다.
스스로는 어린 날의 나보다 성숙해졌고, 이성적인 판단을 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듯 편한 상대에겐 순간의 감정조차 의지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그러고 나서 늘 뒤늦은 후회와 자책을 반복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고 했던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인데, 대체 언제쯤 의식하지 않고 순간의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들을 통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일상 속에서 감사함보다는 결핍되어 있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능에 이끌려 함께 어울리는 상대방에게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실망과 공허함을 느끼며 우울해한다.
나 역시 그동안 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마르지 않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보단, 더 해주었으면 하는 이기심에 요구만 점점 늘어갔다.
부모님의 존재는 공기처럼 당연했기에 소중함보단 익숙함이 가까웠고, 늘 받아만 왔기에 감사함보단 편함이 먼저였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예의를 갖추고 아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이전에는 가족이니깐, 연인이니깐, 친한 친구이니깐, 하는 핑계로 상대방의 무한 이해를 바라며 정제되지 않은 말과 태도를 발산해서 의도치 않게 상대방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면, 이젠 최소한의 경각심은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내년엔 오늘의 나보다 어느 면에서든 조금이라도 철이 든, 성숙해진 내면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