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한다는 것, ’독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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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두달 동안 읽었다. 구병모 작가님을 선망하는 것치곤 오래 읽은 셈이다. 본인에게는 본격적인 사건(기타 선생님과의 교류-사망)이 전개되기 전까지는 '아가씨'와 문오언의 과거에 대한 설명이 다소간 루즈하게 느껴졌기 때문.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내자, 왜 베스트셀러인지 알 수밖에 없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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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가씨의 이름은 끝까지 호명되지 않는다
아가씨의 본래 이름은 오로지 문오언만이 알고 있다. '선생님'인 척하는, 기타 '선생님'의 유족인 여자는 기록을 찾아보면 그 이름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문오언이 기록을 말소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녀가 된 아가씨를 찾아가고, 아가씨가 그녀를 알아본다. 아가씨에게 그녀의 본래 이름을 알려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나부끼며 그녀의 손에 잡히는 딸기무늬 손수건. 문오언이 과거 아가씨에게 선물한 것.
이름은 사람의 본질이다. 그 사람을 호명하며 그 사람이 되게 해주는 것. 그것은 문오언만이 알고 있었으며 끝까지 여자도, 독자도 알 수 없는 것. 여자가 이름을 물으려고 하자 바람에 흩날렸던 손수건은 오로지 문오언의 이름을 되새김질 한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아가씨의 이름은, 아가씨의 본질을 넘어, 문오언의 그녀를 향한 사랑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2. 절창을 통해 사람을 읽는다는 것
문오언은 수차례 자신에게 상처를 내며 자신을 읽을 것을 아가씨에게 종용하나, 아가씨는 모든 사람은 읽어도 너만은 읽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런 그녀의 능력은, 은폐된 어둠의 공간에서 쓰이며, 마치 신 자신이 준 능력을 회수해가듯이 치명적인 상처, 즉 절창이 아니면 더이상 독해할 수 없게 된다. 문오언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어 자신에게 절창을 입힌 것, 아가씨가 피묻은 그의 손을 만지며 결국은 읽어낸 것. 이 모든 것은 문오언의 지독한 사랑과 그에 기반한 계략이 아닌가 싶다. 아가씨를 자신과 동일한 선상에서 법정에 세우고 싶지 않은 것, 더 나아가 그녀의 옆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 그녀를 자신의 곁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던 것. 그것은 사고로 인한 문오언 자신의 절창이었다. 마지막까지 문오언은 그녀가 자신의 절창을 독해하리라고 확신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영 자신의 마음 따위는 몰라도, 지키고 싶다는 것, 죽음 외에는 떨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아가씨는 수녀와 같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처난 그의 손을 만진다. 그것은 '같이 도망가자'고 한때나마 생각했던 그녀가 그를 구원한 것이자, 사랑에 대한 애도이자, 문오언의 반평생을 함께한 자로서의 '예의'아니었을까. 그녀가 문오언만은 읽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은, 그녀의 능력 쇠퇴로 말미암아 읽지 '못하는' 작업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문득 든다. 사랑이란 독해할 수 있는 것인가?깊은 연모의 마음이란 죽음을 전제로 한 절창을 동원해야만 비로소 조금이나마 읽기 시작할 수 있는 예정된 작업은 아닌가?
이를 통해 문오언의 욕망은 이루어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아가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이것은 여자의 '인간의 욕망이 충족되는 것은 대체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p.296)라는 말과 상응한다.
3. 마무리하며
문오언의 죽음에 가까운 절창으로 말미암아 아가씨와 여자의 독서 수업은 종결이 났다. 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권의 책을 펼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세상의 코어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 희망 내지 사랑만은 아니며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간들과 혹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나 자신과 필연적으로 상종하거나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태초부터 운명지어진 비극이라는 사실이지.'
이로써 아가씨는 단순히 상처를 읽어내는 것이 아닌, 한 권의 책-그러니까 한 인간의 생애를 '독해'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담지한다. 그것은 우리 독자도 매한가지 아닌가?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 해시태그가 가득한, 트라우마를 피할 수 있는 책을 거르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서재에 빼곡히 꽂힌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혹은 알고 싶지 않았던 또다른 사람의 생애에 천착하는 것이며,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닌 '독해'하는 것은 예정된 비극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절창>에서 비극의 고전으로 대변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일련의 독해 작업을 통해, 우리는 늘상 그렇듯이 서재에 빼곡히 꽂힌 책을 한 권 꺼내다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권총 한 자루를 겨며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절창>은 사랑이라 읽고 집착이라 쓰는 '순애'에 천착한 사랑이야기를 넘어서, 독자에게 책을 독해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끝에 예정된 것은 무엇인지를 짐작하도록 열린 결말로 쓰인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