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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Oct 27. 2018

엄마의 : 엄마

내가 몰랐던 외할머니 이야기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돌아가신 친정엄마는 지금의 학생회장인 '대대장'을 하실만큼 우수한 학생이었고, 엄마의 꿈은 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 넷 공부시키기도 힘겨웠던 외할아버지는, 싫다고 울며불며 단식투쟁까지 했던 엄마를 달래 졸업과 동시에 시집을 보내셨다.

해방과 6.25전쟁의 격변기에 혼기를 놓쳐버렸던 장남이, 영특한데다 인물도 좋고 나이도 아홉살이나 어린 색시를 맞게된 이 혼사가 친가에서는 몹시 흡족했다.
그래서 엄마의 마을이 생긴 이래로 처음봤다 했을 정도로 숱한 예물을 보내왔고, 성대한 결혼잔치가 열렸다.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화려했던 결혼식을 치르면서, 어쩌면 엄마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혼식이 끝난 뒤의 현실은 녹록찮아서, 시댁에 도착하자 마자 엄마는 받았던 결혼예물부터 반납해야 했다.
함에 넣어 보내왔던 각종 패물들과 바리바리 실어보냈던 피륙들은, 어린 새댁이 보관하기엔 너무 고가라는 이유로 시어머니께 맡겨야 했고 그 물건들은 그 후 단 한번도 엄마는 본 적이 없었다.

다음으로 엄마앞에 놓여진 것은 산더미같은 집안 일이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옷을 며칠씩 입어도 별 흉이 안되던 시절이었음에도, 시댁식구 아홉명 모두는 유별스러울 정도로 깔끔했다. 하루만 입고나면 더럽다며 온 식구가 매일매일 옷을 벗어내니 금새 빨래감이 쌓였고, 때론 리어카에 싣고 빨래를 하러 갈 정도였다.
냇가에서 방망이로 두드려 빨고 삶아 풀 먹여 밟아준 뒤, 숯불피운 다리미로 다림질하고. 반질반질 온 집안을 쓸고 닦아야하는 각종 집안 일들은, 열아홉 어린 신부 혼자서 감당하기엔 참으로 벅차고 힘들었다.

게다가 그땐 석발기를 쓰던 시절이 아니다보니, 쌀에 돌이 정말 많았다.
엄마 딴엔 나름, 쌀 씻을때마다 조리질을 몇 번씩이나 한다고하고. 밤이면 소반위에 쌀을 펼쳐놓고 돌을 고르며 꾸벅꾸벅 졸다, 이마를 소반에 찧곤 하는게 엄마의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와그작" 돌을 씹는 바람에, 위세당당한 시어머니의 서릿발같은 불호령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고 고된 시집살이였음에도.
눈 한번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어렵기만 했던 서방님께, 눈물바람은 고사하고 단 한마디 하소연도 못해봤을 정도로 엄마는 착해빠진 순둥이 쑥맥이었고 무던하기만 한 곰이었다.
사업을 하시느라 늘상 바깥 일에 바빴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엄마의 일상이 어땠는지 전혀 알지못했다.
그러다보니. 시집살이의 설움을 달래줄 남편의 다정한 위로의 손길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건네받지 못한 채.
"책으로 열 권은 족히 쓰고도 남는다!"던 엄마의 외롭고 고단한 날들이 이어졌다.

노총각 장남을 결혼시킨 시어른들이 기다리고 바라는 것은 떡두꺼비같은 장손의 생산이었고, 드디어 첫 아기가 태어났는데 아쉽게도 딸 이었다.
시어른들의 실망이 대단했지만 다행히 이 아기가 인형처럼 너무너무 예뻤다.
훗날 아나운서가 된 이 아기를 데리고 집 밖에 나갈라치면, 지나가던 이들조차 다가와 모두 한번씩 만져보고 갈 정도로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오목조목 이목구비가 빼어나 시어른의 사랑을 받았고 엄마는 겨우 면피를 했다.

그리고 만 삼년 뒤.
어느 추운 겨울날 온 집안이 고대하던 둘째가 태어났는데, 또 딸이어서 시어른들의 낙담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게다가 엄마눈에 비친 둘째는 "누가 볼까 봐 창피해 포대기와 덮개로 꼭꼭 싸매고 다녔다" 하실 정도로, 얼굴이 넓데데 광판인것도 모자라 콧대조차 납작한게 인물이 완전 꽝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고추'도 못달고 나온 것이 못생기기까지 했으니, 시댁식구들은 아무도 둘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1월에 태어난 둘째를, 가을이 다 가도록 이름도 지어주질 않았고 호적에도 올려주질 않았다.
하늘같은 시부모님 눈치만 살피며 기다리다 지친 엄마는, 더는 안되겠다 싶어 아이를 들쳐업고 면사무소로 출생신고를 하러 가셨다.
오랜 궁리끝에 당신이 좋아했던 소설 속 여주인공 '혜랑'을 둘째 딸 이름으로 지은 뒤, 출생신고서를 내밀었다.
언제 어디나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꼭 있기 마련이고, 엄마의 출생신고서를 받아 든 면사무소 직원이 바로 딱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 등 뒤에 업힌, 돐이 다 되어가는 아기의 출생신고서를 훑어 본 직원 왈.
"이렇게 다 큰 아이 출생신고를 지금 날짜로 하는 건 너무 심하니, 좀 당겨서 한 3월 쯤으로 하면 어떻겠소?"
그리고 한 술 더 떠.
"이름을 '혜랑'보다는 난초 '란'을 넣어서 '혜란'으로 하는게, 여자 아이니까 더 예쁘지 않겠소?!"
일면식도 없던 그 오지랖쟁이 면서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엄마덕에 나는, 실제 출생일과 무관한 3월 생일과 웃프게 급조된 '혜란'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엄하고 쉽잖은 시집살이 속에서도 틈나는대로 책을 읽으시고 딸의 이름조차 소설에서 따오려 하셨던 나의 엄마는, 우리 집에 오실때면 늘 사위가 보던 '신동아'나 '월간조선'등을 오래도록 앉아 정독하시곤 했다.
정치나 시사기사가 주된 내용이라 나이 든 할머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뵈는 그런 잡지들을, 돌아가시기 전 여든이 가까운 나이까지도 즐겨 읽으셨다.
그 연세의 엄마가 그런 책을 그리 재밌게 읽으시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존경스러워, 나도 저리 늙어야지 했었다.

또한 엄마는, 보살처럼 어질고 착한 분이셨다. 빚 받으러 갔다가 빚 받는건 고사하고, 그 집 형편이 어렵더라며 오히려 손에 낀 반지를 빼주고 오셨을 정도로 말이다.
뿐만아니라, 남한테 싫은소리 한 번을 안하셨다. 그러니 살면서 이용당하거나 손해를 본 적도 많았지만, 속없는 사람처럼 그저 허허 웃으시며 항상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셨다.
또한 아버지의 사업이 부침이 심해 등록금 걱정을 해야할 만큼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려웠던 상황에서조차, 단 한번도 우리 앞에서 내놓고 돈 없다 불평하거나 신세한탄 하는 일도 없으셨다.

매사에 그렇게 무던하고 욕심없어 보이는 엄마였지만, 자식들 일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욕심이 대단하셨다.
중, 고교시절 중요과목이 아닌 학과의 숙제는, 그거 할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라며 언제나 당신이 도맡아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자수나 뜨게질 등 가사 과목이나 공작숙제는 거의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 삼형제가 성적이 나쁘거나 만화방에 갔다 들키기라도 하면, 공책을 찢기도 하고 책가방을 마당으로 내던지거나 학교를 그만두라는 협박과(?) 매질도 서슴치 않으셨다.

또 대학시절 내가 잠시 만나던 남학생이 부잣집 아들에 외모가 곱상하다는 이유로... 곱게만 자랐으니 생활력도 없을테고, 반반한 얼굴값 한답시고 결혼 후 바람피우면 어쩔거냐며.
결혼 같은 건 아직 꿈에도 생각지 않던 겨우 스무살인 나를 앉혀놓고, 정들기 전에 헤어지라 설득하다 못해 "엄마를 택할래!, 걔를 택할래!" 하셨던 적도 있었다.

자식들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늘 그렇게 열정적이셨던 엄마는, 또 내게 늘 친구처럼 다정다감한 분이셨고 사랑도 넘치도록 듬뿍 부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시집가기 직전까지도 틈만나면 엄마옆에 누워,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친구들 얘기 심지어 미팅가서 만났던 남자애들 얘기까지. 시시콜콜 미주알고주알, 뭐든 다 엄마한테 털어놓곤 했었다.

... 그렇게 지극했던 엄마의 자식사랑과.
엄마 발길 닿았던 국내 외 사찰 그 어디건, 오직 자식들 발복을 빌며 불 밝히셨던 당신의 정성어린 기도 덕분에.
우리 삼남매는 엄마의 어깨를 한껏 세워줄 만큼, 모두 반듯하게 잘 자랐다. 또한 한동안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나 역시도, 이젠 모든 것이 평안하다.

어느새 육십고개를 훌쩍 넘겨버린 내게, 이제 남아있는 바램이 있다면.
나의 엄마 '배숙미 여사'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셨던, 그런 '친정엄마'와 '외할머니'로 딸아이들과 손자들에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며칠 있으면 엄마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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