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책이 가져다준 재시작의 기회
글을 마지막으로 썼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호기롭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고 두 번만에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에 들떠서 블로그에도 공유했었는데, 정작 올린 글은 몇 개 안 된다. 무언가 거창한 걸 써야 할 것 같고,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다 보니 개점휴업이 참 길어졌다. 이제 그런 무거운 마음은 내려두고, 편하게 써 내려갈 기록장으로 브런치를 써보려고 한다.
30대 후반에도 내가 인간관계에 큰 문제를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둘만 있으면 문제가 거의 없을 만큼 좋아서 한 재혼이었지만, 아이들 문제가 끝없이 나왔다. 아이들의 싸움은 어른 싸움이 되었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 이혼을 다시 얘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두 번째 이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 때문이냐고? 그런 걸 신경 썼더라면 첫 번째 이혼도 쉽지는 않았을 거다. 첫 번째는 "안 맞았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정말로 나의 실패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더불어 누굴 만나더라도 다 이럴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크게 싸우고 절망의 끝에서 남편에게 그만하자고 얘기했다. 남편은 서로 너무 피곤한 것 같다며 여행을 제안했다. 급 제주도로 2박 3일 짧은 여행을 잡았다. 마지막까지 노력은 해보고 싶었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일상을 벗어난다 한들, 돌아오면 다시 일상일 텐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기록의 재미에 빠지다보니, 여행 가서도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쿠팡에서 저렴한 여행다이어리를 한 권 주문해 들고 갔다. 아이들 없이 간 제주도는 천국이었다. 사실 아이들도 제주도에 가고 싶을 텐데 하는 무거운 마음이 들어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다가 엎기도 하고, 1주일 사이에도 감정기복이 컸다. 여행을 준비하다가는 급하게 짜는 일정과 예약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또 싸우기에 이르렀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는 화가 치밀어올라 최저가 비행기표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급 화해 후 다시 예매할 땐 이미 가격이 올라갔다. 눈물을 머금고 더 비싼 비행기표를 예매하며 또 한 번 내 짧은 인내심에 한탄했다.
제주도 여행에 내가 챙겨간 건 다이어리만이 아니었다. 내 인생책, 올해는 이 한 권만 읽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 한 권을 더 들고 갔다. 문제가 있어서 찾게 된 책이라 그런지 읽으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게 됐다. 한 달 동안 필사도 하고, 일상에 적용해 보고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분명 20대의 젊은 날에도 읽었었는데, 새로웠다. 인간관계에 문제를 겪고 있는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이 책의 진가가 보였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책 한 권을 천천히 읽고, 곱씹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올 한 해는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남편도 이 책을 진심으로 읽어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선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이제 싸우지 않느냐고?
그럴 리가. 여전히 우리는 싸운다. 아직도 안 싸울 방법을 찾고 싶고, 잦은 다툼에 지친다. 여행 후 달라진 점은 있다. 싸우더라도 이제 선을 지키려고 한다. 서로 감정이 상하지만 끝까지 가진 않으려고 노력한다. 싸우고 나서는 암묵적인 룰도 생겼다. 이 부분은 남편이 많이 노력해 주는 것 같다. 싸웠더라도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같이 보내고 금방 풀려고 노력한다. 생각난 김에 남편에게 노력해 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