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면 사랑할 수 있다.
황당하다와 당황하다의 차이를 아시나요? 당황하다의 사전적 뜻은 ‘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이고, 황당하다의 사전적 뜻은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다.’ 라네요. 둘의 차이점이 보이시나요? 저는 바보라 그런지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1학년 담임선생님이 유재석을 닮으셨었는데요, 수업을 참 재밌게 하셨고, 학생들을 편안하게 해주셨던 분입니다. 황세연 선생님이라고 지금은 모교의 교장선생님을 하고 계십니다. 몇 년 전에 찾아뵀을 때도 여전히 절 기억하시더라구요. ‘민창아. 잘 커줘서 참 고맙다.’라며 연신 손을 어루만져주시고 안아주셨던 황세연 선생님의 온기가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때를 회상해보면, 선생님은 30대 중반이었고 저희는 8살이었습니다. 말이 눈높이 교육이지, 사실 3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고등학생과 10살 차이도 안 나는 저도 그들이 사용하는 ‘좋페’ ‘법블레스유’같은 유행어를 안 지 얼마 안됐으니까요. 그만큼 각자의 환경과 대화의 주제가 다르기에 참 어려운 거 같습니다.
그런데 20년이 넘은 지금도, 황세연 선생님이 황당하다와 당황하다의 차이를 말씀해주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황당하다와 당황하다의 차이를 알고 있니? 쉽게 얘기해볼게. 너희들이 쉬가 마려워서 큰 트럭 뒤에 가서 몰래 소변을 보고 있는데, 차가 갑자기 출발하면 황당한 거고, 그 차가 앞으로 가다 갑자기 후진해서 너희들 쪽으로 오면 그게 당황스러운 거야.’
황당과 당황의 차이를 누구나 공감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시지 않았나요?
부족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종종 찾아오는데요, 그 때마다 황세연 선생님이 참 대단하셨구나라는 걸 느낍니다.
어떤 개념을 나의 경험에 의존하거나, 국어사전에 있는 의미로 설명하는 건 정말 쉽습니다.
왜냐면 그건 딱히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없거든요.
하지만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해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얘기하는 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 직업, 살아온 환경 등을 모두 고려하여야 하거든요.
수지를 국민 첫사랑으로 만들어준 ‘건축학개론’ 보셨나요? 가슴 아픈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채 승민은 건축가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승민에게 15년 만에 서연이 찾아옵니다.
서연은 승민에게 제주도의 고향집을 헐고 새로 지어달라는 부탁을 하죠. 거절하던 승민은 마지못해 수락하게 되고, 승민에게 집을 어떻게 지을 건지 정말 생소한 건축 용어들을 사용하며 설명합니다. 그 얘기를 듣던 서연은 그냥 알아듣게 얘기해달라고 해요. 그리고 승민은 ‘어, 그냥 거실 커튼을 올리면 바다가 보이는 집을 지을 거야.’라고 했고, 서연은 그제서야 입가에 미소를 머금습니다.
이 장면이 참 공감이 갔었어요. 결국 대화의 본질은 우리가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적절한 공감대를 찾아야겠죠. ‘오빠, NBA가 뭐야?’ 라고 물었을 때 흥분해서 ‘아, 그건 르브론 제임스와 데릭 로즈 카와이 레너드 같은 선수들이 아이솔레이션과 픽앤팝, 픽앤롤 기브앤고 같은 다양한 전술을 쓰며 득점을 많이 올리는 리그야. 내가 보기엔 르브론이 제일 잘생겼는데 어때? 보여줄게 잘생겼지?’ 라고 하면 다음 날 헤어지겠죠. 그게 아니라 ‘아, 혹시 농구는 본 적 있어? 우리 나라에서 농구를 제일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KBL이거든, 근데 이 KBL이 루이까또즈 백이라면, NBA는 에르메스 백이야. 전 세계에서 농구를 제일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최고의 리그야.’라고 얘기해주면 여자친구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다보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할 기회가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가 호감이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더라구요.
어떤 책에서 ‘공감하면 사랑하게 된다.’라는 구절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공감을 통해 사랑받고, 또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