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니가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그러게 좀 잘하지 그랬어.

by 권민창

아는 여자 동생이 있습니다. 이쁘고 매력 있지만, 성격도 얼굴값합니다. 그 동생이 남자친구에게 하는 걸 보면 한 번씩 참 못됐다싶습니다.

자기 기분 안 좋다고 다짜고짜 전화해서 상처주고, 저녁 늦게 갑자기 연락해서 집 앞으로 오라한다거나, 피곤하다고 약속 30분 전에 1주일 전에 잡은 여행을 파토냅니다.
아마 남자친구는 동생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3일전부터 가슴설레며 만남을 기다렸을텐데 말이죠.

이런 동생이 최근에 이별했습니다.
남자친구가 동생한테 '왜 한 번도 자기한테 다정하게 굴어준 적 없어?'라고 말하며 헤어지자고 말했다고 하네요.
동생은 미안해서 그 자리에서 계속 울기만 했답니다
꽤 오랜 기간 만났는데 정말 한 번도 잘해준 적이 없었답니다.

전화기 너머로 울먹거리는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러게. 좀 잘해주지. 왜 그랬어.'라고 푸념 섞인 질책을 해봅니다.
동생도 '내가 정말 나빴어.'라고 하네요.
가만히 동생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전 남자친구와의 추억들을 하나 하나 꺼내더라고요. 그 중에 제일 가슴 아프고 미안했던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건 평생 못 잊을 거 같다고.

동생이 다른 일로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답니다.
그래서 뭔 일 있냐고 물어보는 남자친구의 말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화풀이를 했대요.
기분도 안 좋은 상태고 비까지 와서 더 짜증났는데(비를 싫어하는 동생입니다. 짜증의 신입니다.)
약속 있어서 일 마치고 만났는데 남자친구가 먼저 건널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건널목에서 건너오는데 남자친구의 손에 꽃다발이 있더랍니다.
자기때문에 기분 많이 안 좋았냐면서 미안하다고 꽃을 줬다고 합니다.
동생은 너무 미안하고 감동받아서 울었다네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의 책이 있듯, 여자와 남자는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거 같아요.
간단한 예로, 여자친구의 '연락하지 마'라는 말은 '내가 지금 화가 굉장히 많이 났으니 너는 어떻게든 내 화를 풀어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다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아마 상당수가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이 때 진짜 그 말뜻을 곧이곧대로 믿고 연락하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자매품으로는 '뭐가 미안한데?'가 있습니다.
이 때 '그냥 다 미안해'라고 하면 큰일납니다.
여자친구가 원하는 건 자기가 화난 포인트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그 부분을 찝어서 사과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잘못한 게 있을 때 얘기지, 저 동생처럼 기분이 안좋다고 화를 내면 답이 없습니다.
감정기복이 크게 없는 저조차 같이 화를 냈을 거 같아요. 그런데 동생의 전 남자친구는 참 착하기도 하지만, 동생을 정말 많이 사랑했구나 싶습니다.

본인이 뭐가 미안한지 모르지만, 일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기분이 풀어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만 한 거죠.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자친구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줄까?'라고 생각한 겁니다.
누가 잘못하고 잘했지라는 계산자체를 하지 않은거죠.
그리고 집 근처 꽃집에서 꽃다발을 산 후,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비 내리는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동생을 기다렸던 겁니다.

남자친구의 '미안해'라는 한 마디는 동생의 화를 순식간에 덮을만큼 큰 사랑의 캡슐이었을 겁니다.
사실 남자친구가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었다는 걸 동생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토록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음에,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음에 미안하고 감동받았을 겁니다.

동생이 '다시는 그런 사람 만날 수 없을 거 같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사람을 만나려하기보다, 니가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 헤어져도 계속 생각날만큼 따뜻하고 고마운 겨울철 전기장판 같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줬습니다.
아무쪼록 동생이 꼭 그런 사람이 돼서, 따뜻한 연애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이 끝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