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지키는 현명함
예전에 A라는 동생과 얘기하다 굉장히 화가 많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습니다.
B라는 동생이 C라는 여자애를 아냐고 물었고, 저는 C라는 여자애와 적당히 친하게 지낸다라고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이게 와전이 얼마나 심하게 됐는지, A라는 동생은 제가 이미 C라는 여자애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들었다며, 다 안다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짓더라고요.
감정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만, 지금 이 친구에게 제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배설한다면 A도 상처를 받을 것 같아 10초 정도 얘기를 안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형, 왜 그래요? 아니예요?'
갑자기 생각에 잠긴 절 보고, 가볍게 웃으며 넘길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A도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A야, 혹시 그 얘기는 어떻게 들은거야?'
그러자 A는 안절부절합니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은 거죠.
'아니, B가 그러더라고요..'
참 말이라는 게 무섭습니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않고 '걔 그랬다, 걔 그렇대.' 한 마디면 사람 바보 만드는 건 한 순간이거든요.
A와 B에게 정확히 내가 느끼는 감정과 그들의 잘못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얘기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야, 나는 C와 친하다고 했을 뿐인데, 그런 식으로 와전이 되어서 좀 많이 당황스럽네. 그리고, 그렇게 웃으면서 가볍게 농담할 상황은 아닌 거 같아.'
그러자 A가 안절부절합니다.
'죄송해요. 형, B가 그렇게 얘기하길래..'
다시 얘기했습니다.
'응, 괜찮아. 하지만 지금 니가 느낀 감정을 B에게 폭력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왜 거짓말 하냐고 뭐라하지도 말고 욕하지도 말고 이성적으로 B의 말도 차근차근 들어봐야 될 거 같아.'
잘못한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를 준 B에 대한 화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했던 거죠.
그러자 A의 얼굴이 조금 평안해집니다.
'형, 많이 화가 나셨을텐데 좋게 얘기해주셔서 감사해요. B랑도 잘 풀어볼게요.'
다음 날, A와 B가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형, 진심으로 죄송해요. 말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제가 형이었으면 욕하고 엄청 화냈을텐데 그 상황에서 형이 그렇게 편하게 감정을 전달해주셔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말그릇'이라는 책에는 감정표현의 3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폭포수형, 두번째는 호수형, 세번째는 수도꼭지형입니다.
폭포수형은 기분이 나빠지면 감정을 쏟아내야 속이 후련해지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는 가시 돋친 말에 상처를 입고 나가떨어지죠.
두번째는 호수형입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수는 고여있습니다. 물은 자연스레흘러야 하는데 고여있으면 결국 썩게되죠.
세번째는 수도꼭지형입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흐르지 않게 잠가두고, 필요할 때는 원하는 만큼 조절해서 사용합니다. 감정 표현이 정확한 사람은 목적에 맞는 말을 꺼내어 사용할 줄 압니다.
놀란 마음에 엉뚱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해결해야 할 감정을 모르는 척 미루어두지 않는거죠. 말과 감정이 조화롭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A와 B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게 부끄럽고 힘든 일인데 용기내줘서 고맙다구요.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기 쉬운 상황에는, 말을 하기 전에 5초 정도 생각하고 얘기하는 게 좋은 거 같습니다. 이 상황에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자연스레 거칠었던 감정이 어느정도 정제되고, 좀 더 솔직하고 이성적으로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A와 B랑은 지금도 참 좋은 형 동생 사이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기보다 사랑과 행복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볼 용기가 있는 친구들이니 분명 그런 사람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