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튼, 영국
작년 10월에 서울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1926~2009) 사진전에 갔다 왔다.
나는 그동안 비비안 마이어가 영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늘 헷갈렸는데 그 이유가 작가에 대해 처음 알려준 사람이 중년 여성의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영국 남부 해안가 마을인 브라이튼의 싸구려 호스텔의 도미토리실에서 만났다. (참고로 비비안 마이어는 미국인이다.)
이런, 계획이 틀어졌다.
원래 머물기로 한 작은 도시인 본머스의 호스텔이 성수기 외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결국 근처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으며 가게 와이파이를 이용해 브라이튼으로 가는 티켓을 급하게 끊었다. 숙소는 가장 싼 곳으로 12 베드 도미토리로 10파운드도 하지 않아 운이 좋았다.
한밤중에 도착한 브라이튼은 어둡고 세찬 바닷바람이 몰아쳤다. 이가 덜덜 떨릴 정도의 추위에 도착한 숙소에 스페인어 악센트의 친절한 리셉션 직원이 침대커버를 주었다. 그렇게 들어간 도미토리는 살면서 처음 보는 형태의 컨테이너 형태의 3층 벙커 침대가 있었다. 최대한 공간을 뽑아 먹겠다는 호스텔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난 가장 높은 3층에 자리를 잡았다.
더러운 침대 매트리스에 커버를 씌우고 본머스에서 먹다 남은 피자 4조각 중 2조각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저녁으로 먹으니 처량한 기분이 드는 것도 잠시, 그런 침대에서도 눈을 붙이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오히려 런던에서 머물렀던 편한 숙소에서보다, 더 눈이 녹듯 침대와 하나가 되어 푹 쉬었다.
다음날, 브라이튼의 날은 밝았다.
전날과 반대로 아침의 햇살은 이 영국 남부의 바닷가 도시를 구석구석 환하게 비쳐주었다. 숙소 바로 앞에 해변이 있어 가볍게 산책을 나섰다. 산책 시간 동안 브라이튼이란 도시에 매료되긴 충분했다. 그동안 머물렀던 다른 영국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밝고 활기차서 영국에서 산다면 이곳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책 후 숙소로 돌아왔을 때 같은 방 룸메인 영국인 중년여성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브라이튼에 일을 찾고 자리 잡기 위해 커다란 캐리어와 머물러 있었다. 과거에 교사라고도 했던 것 같다. 이 방엔 다양한 국적과 연령의 사람들이 머물렀다. 나 같은 여행자도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일을 찾아온 영국인은 물론, 당시 국가적 경제적 위기에 돈을 벌러 온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이 저렴한 호스텔의 도미토리에서 돈을 아끼며 일을 찾거나 방을 찾을 때 거쳐가는 곳이었다. 그 장기투숙객 중 하나인 그녀가 사진을 공부할 나에게 '비비안 마이어' 란 작가에 대해 알려주었던 것이다.
모든 말을 알아들은 건 아니지만, 대화에서 알아들은 단어들인 내니 Nanny, 여성 포토그래퍼란 키워드로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냈고 관련 다큐멘터리인 Finding Vivian Maier(2013)까지 보게 되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단순히 내니인 줄만 알았던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창고에 엄청나게 쌓인 미현상 필름들을 경매로 구매한 존 말루프라는 젊은 청년이 사진을 인화하며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굴되었다는 말이 더 옳겠다.
2022년으로 다시 돌아와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서 와닿았던 건 50년대에 세계여행을 다닌 사람이 1%인 시절 이모할머니께 받은 유산으로 30대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떠났고 사진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여성으로서 개척되지 않은 길을 홀로 여행 다녔던 탐구심과 더 많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전시에는 없었지만, 여행 중 찍힌 그녀의 얼굴은 평소 아이들에게 군화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의 굳은 얼굴이 아닌 편안한 미소가 자리 잡혀 있다고 한다. 사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작품성 여부를 떠나 그녀에 관한 스토리가 미디어를 통해 과대 파헤쳐지고 추앙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직접 작품들을 보며, 내니라는 직업 뒤에 뜨거운 열망과 과감함을 간직하며 순수하게 자신만을 위해 사진을 찍은 그녀만의 즐거움에 대한 존엄성이 올라갔다.
2014년, 그 호스텔에 있는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였다.
각각 자신만의 고단한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엔 열망과 빛이 있으리라. 나는 그때 영국에서 추위와 불친절, 어긋난 계획에 너덜너덜해졌지만 뒤늦은 꿈을 위해 합격한 대학원들을 직접 찾아가 보는 여정 중이었고(결국엔 스페인에서 공부했다ㅎ) 비비안 마이어를 알려준 그 중년 여성 역시 그녀가 쌓아 올린 경험과 삶이 있다는 것이 짧은 대화로나마 느껴졌다. 자신의 자리에서 늘 친절했던 리셉션직원과는 호스텔을 떠날 때 수줍은 미소와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평온과 휴식을 좁은 박스 침대 안에서 느낄 수 있다니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열두 사람이 쓰는 청결하지 않은 화장실에서 지친 피로를 샤워로 쓸어내릴 수 있는 감사함을 느꼈다. 조악하지만 싸구려 호스텔에선 조식이 제공되어 가난한 여행자의 배를 채워주었다. 내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작은 것에 감사하다니, 가치는 참으로 상대적이기도 하다.
브라이튼은 너무 아름다웠다. 밤에 8파운드 주고 관람차에선 직원의 친절로 모두가 내리고 홀로 관람차를 한번 더 타며 브라이튼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렸다. 보라색으로 물드는 바다와 도시, 해변의 사람들을 담은 풍경은 쓸쓸하지만 좋았다.원래 안 좋은 일의 정점을 찍으면 다시 좋아지듯 브라이튼에서 생각 외로 좋은 시간을 보낸 후 마음에 살짝 온기와 용기를 얻어 맨체스터로 돌아갔다.
@Brighton, United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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