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 서울
가정보육으로 정신없는 올해 12월 그녀의 생일이 왔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초댄 못했지만 한국에서의 첫 생일을 최대한 기쁘고 예쁘게 해주고 싶었다.
최근 2년간 생일을 제대로 못 해준 게 마음이 아파서 더 그랬다. 덕분에 올해가 여태까지 중 가장 많은 선물과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가장 축하를 받은 날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녀의 돌이었다.
난 그냥 조용히 가족끼리 축하하려고 했는데 그가 처음인 만큼 크게 하고 싶다 해서 그녀를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장소는 친구를 통해 빌리고 초대장은 모바일용으로 만들어 주변 친구들에게 보냈다.
준비하다 보니 이게 뭔가 돌아가고 있나 싶었고 준비하다보니 스트레스도 받아서 해야하나 싶은 사이에 파티날이 왔다.
파티 장소는 그의 친구가 아는 사람(=모르는 사람)이 운영하는 남미 국가의 센터장이었는데 작은 강당 정도의 적당한 크기였고 나도 그날 처음 가보았다.
카나페를 준비하고 아이의 사진을 커다란 스크린에 틀고 풍선을 붙이다 보니 하나둘씩 초대한 사람들이 온다. 내가 아는 사람, 그가 아는 사람, 우리 둘 다 모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다양했다.
이 생일의 하이라이트는 그녀를 위해 아프리카 음악 뮤지션 친구들이 왔다는 것이다.
타악기와 현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보던 사람들은 일어나 춤을 추고
아직 걷지 못했던 너도 신나서 발돋움을 계속하고 나는 이 장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다 같이 밥도 먹다 보니 시간은 오후가 돼가고 연주가들은 생일파티의 본분을 넘어서 자신들이 심취해 콘서트보다 더 뜨겁게 연주하고 있었다는 게 웃음 포인트였다.
모두가 행복했고 즐거웠다.
아직도 파티의 순간들은 사진처럼 장면 장면이 남아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케이크 불도 붙이고 여러나라 언어로 생일 노래도 부르고 선물도 많이 받았다.
핸드폰이 망가져 영상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아쉬울 뿐이다.
이때의 축하파티가 없었다면 나는 그 후 2년 동안 네게 충분히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자괴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녀의 생일은 내가 엄마로서의 생일도 맞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억도 안나는 열몇 시간 만에 진통으로 힘들게 아이를 낳고 3일 병원에 머문 후 유럽엔 조리원이란 게 없어 바로 집으로 가서 육아를 시작했다. 출산 후 상처에 이래저래 감염이 되어 3개월 동안 몸이 부서질 만큼 힘들어해서 한국에서 치료받고 와야 하나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다. 약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었는데 그것을 못 찾은 스페인 의료진으로 인해 몸이 아파 걷다가 통증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지옥의 3개월을 버티며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엄마의 목숨을 건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에겐 네가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평생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제는 엄마에게 하나 남은 과자를 반을 잘라 더 큰 조각을 너 먹고 나머진 나에게 줄 정도로 자란 너.
육아는 정말 나랑 안 맞고 제약도 너무 많아져 고통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네가 있는 것이 더 좋다. 밤에 동화책을 읽고 네 손을 잡거나 발을 잡고 자는 것이 좋다.
네가 나를 안아줄때 마음에 몽글몽글한 것이 차오른다.
스페인에서의 첫 생일과 한국에서 보낸 첫 생일이 이렇게 좋았으니
앞으로도 너를 아끼는 사람들과의 즐거운 축제의 날들이 네 인생길 위에 있을 거야라고,
언젠가 네가 이 글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정한 사랑을 담아 축복의 글을 남겨본다.
Te quiero mi joya preciosa.
@Barcelona &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