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의 자몽 와인

리옹, 프랑스

by Nanal 나날

우리는 도시의 랜드마크인 언덕 위의 성당으로 향했다. 저렴한 자몽 와인, 다크 초콜릿 그리고 종이컵 두 잔을 들고.


곧, 10여 일 정도 머물렀던 리옹을 떠난다.

티보 얼굴도 보았고 한 도시에만 머무르는 게 조금은 지루해졌기 때문에 샤모니로 옮기기로 했다.

티보는 뉴욕 어학반 첫날 옆자리에 앉았던 프랑스인으로 쉬는 시간 담배를 같이 피우다 친해져 티보, 나, 다른 한국인 동생과 셋이서 다녔다. 친화력이 아주 좋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친구=게이로 덕분에 재밌는 곳을 많이 갔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꾀죄죄하게 배낭을 메고 그가 일하는 리옹의 쇼핑몰 센터에서 해후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헤어질 때가 다가왔다.



사실, 도착지의 성당 이름을 몰라 글을 쓰기 위해 구글맵을 찾아보았다.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 La Basilique Notre Dame de Fourvière이다. 그때도 이름을 몰랐다.

그 정도로 무감하게 리옹에 있었다. 티보 만나기가 목적이어서 낮에는 중심가에 가거나 집 근처에 유유자적 다니다 티보가 퇴근하면 같이 놀곤 했다. 지금 지도를 보니 커다란 호수에 공원에 콜로세움도 있는데 8여 년 전 다 내가 놓친 것들이다. 이미 긴 여행으로 지쳐있어서 해파리 상태로 둥둥 떠다니듯 다니던 중이라 어딘가를 꼭 봐야 한다 라는 열정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때의 여행에 대한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내가 느끼고 있다.




우리는 성당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아 와인을 까서 종이컵에 부운 뒤 'Cheers'를 하고 마셨다.

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여름 와인이다.

시원한 자몽이의 맛이 청량하고 알딸딸하게 기분 좋게 올라온다.

안주로 산 다크 초콜릿을 한 조각씩 부셔 먹었다.

높은 곳에서 도시를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와인을 마시니 기분이 좋다.



우린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진 연애 이야기였다.

그는 막 헤어진 참이고 나도 마찬가지라 할 이야기는 많았다.

우리는 뉴욕 때부터 서로의 연애사를 알았다.

뉴욕 한복판에서 이별 후 내가 질질 짜고 있으니 근처 레스토랑 바에서 와인을 사주며 '그게 인생이야' 라며 위로해주었고 그는 이미 예전에 헤어진 멕시칸 아메리칸인 전 남자 친구 집에 재료를 사가 홈 멕시칸 요리를 같이 얻어먹기도 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도시는 핑크와 자몽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우리의 와인도 빠르게 끝이 났고 초콜릿만 남았다.

어느새 완전한 어둠이 내려오고

우리는 조금 취해 '와하하' 왁자지껄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 마셨던 2유로 정도의 자몽 와인이 왜 그리 맛있었는지 몇 년 뒤 다시 프랑스에 갔을 때

잊지 않고 한 병 사 왔었다. 리옹의 추억을 와인과 함께 달콤하게 넘겼다.


@Lyon, France /photos by Iphone3






















작가의 이전글잃었던 친구에게서의 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