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가 두려웠던 밤들의 기록
“불 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깊은 밤 하늘 호수에는 물이 없고,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노를 저을 수 없는 달은 수심 없는 호수를 미끄러져 가고, 불러 세울 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中
2019년 12월 3일
종강까지의 날짜를 세어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낸지도 벌써 몇 달째이다. 돌이켜보면 대학 생활을 하면서 힘들지 않았던 학기가 없었다.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꾹꾹 내 시간을 눌러 담아, 즐겁게 그리고 한편으론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데 유독 이번 학기는 좀 달랐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기엔 어렵지만,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때부터 내가 전과 다르게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난 학교에 가지 않았고 밥도 먹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했다. 밤마다 울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우울했고, 이렇게 어렵게 잠에 들어도 어김없이 내일이 찾아온다는 것이 두려웠다. 혼자 있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영영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순된 두 감정의 충돌이었다. 핸드폰을 끄는 일이 잦아졌다.
난 무감각함이라는 낯선 감각을 마주해야 했고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번아웃은 아니었다. 번아웃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지금의 내 상황에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라 마음이 뒤숭숭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고민해봤을 때, 분명 그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원인일까 여러 가설을 세워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 학교의 상담센터를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과 기분을 정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가 없어 매우 곤혹스러웠다.
갑자기 내가 외국인이라도 된 것처럼. 기본적인 것도 일일이 힘을 들여 설명해야 하는 데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갔고,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얄팍하고도 두꺼운 가면을 써야 했다. 반드시 봐야 할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가급적 그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했다.
포항에 있는 것이 점점 괴로워지고 이 모든 상황을 초기화하고 싶단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내게 문제가 있다면 하루빨리 고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중간고사를 앞둔 시점에서 학기를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결심한 그다음 날 휴학 신청서를 내기 위해 학생지원팀을 갔다가 학기의 2분의 1 시점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받은 국가장학금을 되려 현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는 그 상황에 화가 너무 났다. 그때 대낮에 주차장에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그렇게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억지로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남은 9주 정도의 시간을 버텨낼 방법을 시급히 마련해야만 했다.
오히려 극단을 찍고 나니 마음이 아주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 해보자, 일말의 용기 비슷한 것도 생겼다. 물론 그 이후로 갑자기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밤마다 울고, 외롭고, 슬펐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은 바뀐 모습도 있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수업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고, 멀리 있지만 정말 내게 중요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작은 목표들로 이루어진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오늘은 꼭 빨래를 해야지. 내일도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나가야지.
그 무렵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 그러니까 텍스트를 다루는 일을 다시 시작한 것도 있다. 내 글을 조금씩 다시 쓰기도 하고, 글의 편집과 디자인에 시간을 들이기 시작했다. 영영 안 갈 것만 같던 지루한 시간들이 괴로웠던 내게 이 일이 일종의 마취제가 되어준 셈이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은 2014년 2월 8일, 내가 고등학생 때 생일 선물로 받은 동명의 시집에 실린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절판된 시집을 리커버판으로 재출간하는 '시인선 R' 시리즈의 일환인데, 두꺼운 머메이드 종이에 은은한 에폭시로 제목을 두 번 표기하는 디자인의 표지이다. 그래서인지 만지작거리기만 해도 기분이 나아지는 시집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배울 때 개인작업으로 레터링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이 시기를 겪으면서 들었던 가장 괴로웠던 생각은 이대로 감각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더 이상 그 어떤 일에도 설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였다. 그런 위기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들 때일수록 과거의 날들을 많이 떠올려보려 했다. 아주 어렸을 때 경험했던 모든 처음들,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여러 신기한 일들. 또한 고등학교 때 블로그에 썼던 글이나 대학교에 와서 과제로 썼던 글을 다시 들춰보기도 하고, 좋아했던 책을 다시 읽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차가운 정보가 아닌, 작가의 애정이 담긴 글을 통해 잊힌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여러 밤을 지나오면서 이후에 내 이마에도 한 가닥의 물결무늬가 새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한 단층을 이루는, 도톰하고 까끌거리는 한 시절의 흔적이. 파도가 산산이 부서지던 자리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명한 자국이 드러나는 것처럼. 시는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 오를 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 절해고도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