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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Nov 08. 2021

녹차꽃 필 무렵

고흥가는 길, 만난 풍경과 생각들

중력을 거스르는 인간의 노력과 그 결과물에 열광하는 여덟 살 남자아이를 키운다. 얼마 전 발사를 시도한 누리호의 여운이 남아 남편이 고흥으로의 여행을 제안했다. 발사 현장을 직접 볼 수는 없어도 과학관이 잘 되어 있다고 들었다.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거리지만 쉬엄쉬엄 가보기로 했다. 어린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아침도 먹고 커피도 한잔 사느라 10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먹으러 꼬막정식집에 들렀다. 신혼  남편과 보성 여행을 갔을   보려 했지만  그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결국 패스할 수밖에 없던 식당이었다. 1 2일인가에서 나왔다는 꼬막정식 골목과는 떨어진, 보성 가는 길가에 있는데 거의 10 만에 찾아온 셈이다. 자리에 앉으니 횟집처럼  비닐을 탁자에 깔아주더니 그야말로 꼬막으로 한상 가득 음식들을 내어온다.         


     

친절하고 음식도 하나같이 다 맛깔스러웠다. 역시 한번 찾아올만하네. 생각이 들었다. 꼬막을 좋아하는지라 삶은 것, 무침, 전, 절임, 탕수, 된장에 넣어 끓인 것... 온갖 종류의 꼬막 요리를 맛볼 수 있어 좋았지만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는 우리 가족에겐 양이 많았다. 이런 상차림을 마주할 때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량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충돌하며 몸도 마음도 불편해진다.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필요 이상으로 채운 속에 거북스러움을 느끼며 다음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적당량의 음식을 찾아봐야겠다 생각했다. 사는 것도 비슷할 것 같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이끌려 탐하다 보면 그것을 소화하느라 한정된 힘이 낭비되어 버린다. 정말 의미 있는 것들에 마음과 에너지를 쓰고 싶어도 이미 소진되어 있기 마련이다.       

     

맛있었는데 어쩔  없이 남긴 음식에 아깝기도 미안하기도  기분으로 다음 행선지인 보성으로 갔다. 입구에 위치한   삼나무 길의 서늘한 그늘에 들어설 때마다 20 시절, 절친과 함께  전라도 여행이 떠오른다. 나무는 얼마만큼  자랐고, 나이테에 주름을 하나  새겼을까? 얼마의 비바람과 뙤약볕을 견디고 지금 이렇게 덤덤하게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많이 멀리  것일까?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은 무엇일까?


     

마침 차밭은  매화 같기도   꽃이 여기저기 피어 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코를 가까이 가져가 보니 희미한 향이 났다. 녹차꽃  무렵의 차밭의 언덕을 크게 둘러서  바퀴 걸었다. 아이 어릴 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바다 전망대까지  보기로 하고 언덕을 올랐다. 걷기 싫어하는 녀석에게 남편이 계단 오르기 게임을 제안했다.  꾀가 아주 쉽게 먹혀들었다.                 


     

한번 이기면 1칸, 두 번째는 3칸, 세 번째는 5칸, 네 번째는 10칸.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걸음 수에 아이의 승부욕이 불타올라 긴 계단을 순식간에 올랐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둥그런 줄로 펼쳐지는 탁 트인 차밭의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났다. 여러 번 와서 봐도 질리지 않는 초록이 주는 평화로움과 해방감의 위안이 너그러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바다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땅의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친 돌길이었다. 잘게 부수어지고 사람들의 발길에 드러난 뾰족한 돌들의 느낌을 발에 그대로 받으며 전망대에 올랐다.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은 없지만 높은 곳에 오를 때마다 신혼 초 남편과 갔던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전망대가 떠오른다.

     

아주 별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둘 다 말없이 전망대의 흙 언덕에 앉았다. 작은 일 때문에 오래 꿈꿨던 여행이 엉망이 되었다. 무릎을 세워 모으고 앉아 푸른 아드리아해와 붉은 오렌지빛 벽돌 지붕의 풍경을 보는 사이 서서히 시시해지고 유치해졌다. 모든 것이. 다행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아무 말 없었지만 그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아직 자주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며 살고 있다. 느낀다고 해서 바뀌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높은 곳에 오를 때면 그때가 생각난다. 다시 내려갈  즈음에는 가슴속에 있던 작고 별것 아닌 그에 대한 불만들이 아주 살짝 누그러져 있는 것을 느끼고는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편백나무 숲으로 걸어 내려와 아이가 원하던 녹차 맛과 우유맛 아이스크림을 한 컵씩 사서 나눠먹고, 최선을 다해 떨어진 낙엽을 주워 모이는 아이를 도와주었다. 아이는 차밭의 돌멩이 몇 개와 빨갛고 노란 나뭇잎을 요즘 최애 하는 포켓몬 카드 다루듯 귀하게 챙기더니 가게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얻어와 고이 넣어서는 손으로 꼼꼼하게 묶었다.     

     

돌멩이와 낙엽이 든 봉지와 다원의 풍경을 예쁜 그림으로 담은 서류 파일 하나를 기념품으로 챙겨 다시 고흥으로 가는 차 안에 올랐다. 숙소까지는 2시간 정도 가야 했다. 초행길에 네비를 찍고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갈 길을 재촉했다. 아이의 요청으로 영화 < 캐러비안의 해적> OST를 오케스트라로 연주한 버전을 들으며 갔다. 바다에 면한 갈대밭이 장관이었다.     

     

한창 달리다 보니 중산 일몰 전망대라는 곳이 보였다. 마침 우리의 오른쪽에서 오늘의 해가 저물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지는 해를 보러, 아이는 얼마 전에 <날아라 슈퍼보드> 보다가 졸라서 갖게  장난감 쌍절곤을 휘두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우리 말고 몇 팀이 일몰을 구경하려고 이미 도착해 있었다. 억새 넘어 너른 평야가 펼쳐지고 평야 끝에 자리 잡은 산인지 섬인지 능선 위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참 그대로인 것 같더니 산 아래로 떨어지는 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장비를 제대로 갖춘 사진사와 차를 몰고 가다가 우리처럼 해넘이를 보러 온 사람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      

     

딱히 무엇이 좋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좋았던 오늘의 낮이 떠나가고 있었다. 역시나 좋을 것 같은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사 무탈한 이 순간에 감사를 담아 이별과 환영의 마음으로 안녕. 인사를 건네며 빨갛게 저물어 가는 해를 향해 손을 흔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어느새 세상이 금세 어둑해졌다. 숙소 근처에 마땅히 먹을 곳이 없다고 해서 고흥 초입에 위치한 먹자골목에서 간단히 삼겹살 백반 정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숙소에 도착할 무렵은 정말 깜깜했다. 월초라 달도 늦게 뜨는 시기,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시골길 같은 곳을 한참 달려 약간 외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리조트에 도착했다. 지나쳐 오고 보니 그곳은 방조제 위의 길. 양옆은 바다였다. 체크인을 하고 시간을 보니 아직 초저녁이었다.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천체과학관에 가 봐도 될 것 같아 또 길을 나섰다.             

     

여행 준비하며 홈페이지랑  확인했을 때는 분명 휴관 안내가 없었고 22시까지 운영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임시 휴관으로 문을 열지 않는다고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마침 달이  보이지 않을 시기라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조금 허탈했고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없는 . 다시 숙소로 돌아가 짐을 풀고 씻고 가져온 과자와 함께 맥주를   땄다.       


남편이 장을 보면서 새로 출시된 트러플 새우깡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맛을 보니 꽤 괜찮았다. 몇 개 집어먹다 보니 느끼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호불호가 갈릴 물건이구먼.' 트러플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가끔 요리에 트러플 오일이나 소스를 취향대로 넣어 먹기도 하지만 새우깡은 한 번에 10개 정도가 딱 적당한 느낌이었다.     

요즘 거듭 고민한다. 특별하던 일이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것, 일상이 될 때 그것도 이 트러플 새우깡처럼 분명 좋은데 금세 물릴까?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고 새우깡을 와자작 씹으며, 아이와 남편과 함께 숙소의 TV로 명탐정 코난을 보았다. 남도일이라고 했던가? 소년이 좋아하는 한 소녀를 앞에 두고 고백하는 일에 실패하며 낭패인 표정을 지었다.      

     

안타까움이 올라왔지만 쉽게 포기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소년처럼 오랜 고민은 내일의 과제로 넘기고 오늘의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달 하나 없어 그저 깜깜할 뿐이었지만 분명 거실 창 바깥에는 바다가 있다. 내일 해가 떠오르면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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