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가 아니라는 건, 함께할 누군가가 또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건 뭐든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함께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떠 오른 단어들이 있다. 인연, 동지, 짝, 끈 등이다.
얼마 전 사고뭉치 ‘동기부여 된’ 동영상을 찍고 나서 최고의 동기부여는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과업이 주어졌을 때 이 일을 어떻게 할까? 누구와 할까? 고민한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부분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연락한다. 흔쾌히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은 술술 풀린다.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떤 인연이 닿았을까? 생각해보면 첫 번째는 그 사람의 분위기였다. 왠지 끌리는 분위기에 매료된다. 만남의 초기 느낌은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느끼는 그 느낌이라는 건 대단히 위험해 보이긴 하다. 두 번째는 언어와 실천을 보고 매료된다. 느낌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관계는 증폭된다. 셋째는 내게 없는 그의 장점이 부럽다. 난 이렇게 인연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관계의 확장은 동질감을 느끼면서다. 생각이 비슷함을 느낀다. 그 사람의 생각이 느껴진다. 내 생각이 읽힌 듯 느낀다. 이런 교감이 생성되면 동지라는 생각이 들고, 함께 하는 것에서 시너지가 상승한다. 확실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동기가 부여된다. 일이 쉬워진다. 이렇게 짝이 되고, 끈이 된다.
‘함께여서 좋아!, 함께여서 다행이야!, 함께여서 고마워!, 덕분에 해냈어!, 함께여서 가능한 일이야!’, 듣기 좋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 삶을 살고 싶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노을의 함께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마감한다. “~~생략~~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게 아니겠니, 함께 숨 쉬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든든한 벽은 없을 것 같아, 그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
전하영
10여 년 전 프리랜서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주로 혼자 강의나 컨설팅하러 다녔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모여 연구 프로젝트를 같이 할 때에도 나의 주 활동이 아니었기에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다시 혼자 전국을 다녔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일들을 도모하면서 공동체 활동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다양한 공동체 활동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였고 그중 생명력이 높은 활동만 남게 되면서 자연스레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직업적 활동은 강의와 컨설팅 중심으로 모이고, 놀이 활동은 독서 모임인 ‘여인네 남정네(여기 인문학 있네! 남다른 정도 있네!)’ 중심으로 모이고, 딩굴딩굴공작소(DDF)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공간의 컨셉과 활동의 가치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니 새로운 활동이 만들어지고 그러다 보니 또 사람들이 모이고, 또 새로운 활동이 만들어지고를 반복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면서 ‘관계’에 대한 고민도 점점 깊어져 갔다. 놀이 활동은 주로 즐거움을 가져다주기에 그 가치 하나로 쉽게 함께 하게 되지만, 직업적 활동은 지향점과 역량 등 다양한 요소들이 융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함께 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님을 종종 느끼게 되었다. 여기에 놀이와 직업적 활동이 결합하면서 좋은 시너지를 내기도 하지만, 마이너스 요소들도 나타나면서 ‘역시 인간관계는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
이런저런 많은 경험을 통해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나 나름의 전략 또는 가치라 할 수 있는 표현이다. 관계 설정의 가장 어려운 점이 거리감이다. 즉 친함의 정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따라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하고 갈등의 상황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사람마다 거리감은 다 다르기에 일률적인 잣대를 댈 수도 없기에 더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내 나름의 선택은 ‘서로 피곤하지 않은 관계’로 남는 것이며, 오고 가는 것에 대한 자유로움이 당사자의 선택이자 책임이라 생각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에 지나친 감정은 독이 되기도 하니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지혜가 필요하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닌, 맞고 틀린 것이 아닌, 자기 취향에 맞게 함께 하며,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며 언제든 함께 할 수 있으며,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즐겁고 의미 있는 활동을 늘 함께 하고 싶다.
‘우리, 함께 할래요?’
권창숙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안치환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中
‘함께’라는 이 달 주제를 보자마자 떠오른 건 이 노래다.
대학 때 나는 학과 내 두 동아리분과에 속해있었다. 한 곳은 역사학술분과였고 또 한 곳은 민노래분과였다. 민노래분과에는 민노래가 뭔지도 모르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들어간 것이었고 학교 전체 동아리는 아니었기에 과내 행사가 있을 경우에 무대에 서는 정도였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늘 새로운 노래도 배우고, 익힌 노래는 연습하고, 그리고 끝나고 함께 밥 먹는 자리가 즐거워 4년간 민노래분과에 속해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이 노래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노래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노래를 부를 만큼 세상을 알지는 못했기에 노래 가사의 표면적 의미를 아는 정도로 노래했었다. 그때의 두 배 이상의 나이를 먹은 지금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이 가사가 세상을 살아가는 해답으로 딱이네.’
‘가사에서 말하는 것들이 쉬운 듯 하지만 쉽지만은 않지.’
‘저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내가 저런 사람이 되어 주는 것도 쉽지 않아.’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올라온다. 몰라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알아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노래 속에 있는 투쟁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노래 가사일 수 있다. 동지가 무겁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동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파트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팀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중 살겠다고 혼자 간 사람이 아니라, 어렵지만 함께 간 두 사람이 결국 서로의 체온과 서로의 보살핌, 격려로 살아서 마을로 내려온 이야기처럼, 손 맞잡고 서로 일으켜주고 서로 기대며 간다면 마침내 정상에서 함께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골인 지점을 통과할 것이다.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함께 가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함께 가자고 이야기 듣고 싶은 것처럼, 함께 하자는 이야기가 내게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누군가 그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도, 그 이야기가 실질적인 도움이 안되더라도, 한번 더 몸을 일으키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손 내밀며 물어보자.
“우리, 함께 할래요?”
쌍쌍바의 추억
최정연
막대를 쥔 양손에 신경 써서 힘을 준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숨을 고르고 손목 스냅을 이용한 고급 기술을 더해 힘을 주는 순간, 한 개이던 아이스크림 바가 두 개로 쪼개진다. 친구와 하나씩 나눠 들고 잘 쪼개었네, 아니네, 실랑이해가며 그 시원함과 달콤함을 나눈다.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해 봤을 ‘쌍쌍바(bar)’의 추억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투게더♬’ 라며 아예 대놓고 누구와 함께 먹으라고까지 지목해주던 아이스크림도 있다. 1970년대에 탄생해 지금은 내 나이와 비슷한 두 제품이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하다.
사실, 아이스크림처럼 맛난 것은 혼자서 남몰래 먹어야 그 맛을 독차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굳이 친구와 그토록 수고스럽게 나눠 먹으라니 참 유별난 마케팅이구나 싶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제조사와 광고사는 아이스크림이면 당연히 연상되는 달고 시원한 맛을 넘어선 그 무언가를 전략으로 삼지 않았을까. 혼자 먹으면 맛은 있지만, 재미가 없다. 가끔 욕심부려 혼자서 양손에 막대기 두 개를 쥐고 있으면 스스로 왕따를 인증하는 것 같을 테고, 또 혼자라면 막대기가 두 개씩이나 꽂혀 버릴 때도 두 배로 성가신 쌍쌍바를 굳이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나오는 ‘혼자 먹는 쌍쌍바’는 이미 나에게 별 의미가 없다.
하나를 애써 반으로 나눈다는 것은 함께할 누군가가 있음을 전제한다. 쌍쌍바는 평범한 초코바의 맛을 내세우는 대신, 반으로 잘 쪼개야 하는 수고로움을 소비자에게 전가함으로써 ‘함께’와 ‘나눔’의 추억을 제공했다. 잘 쪼개기 위해선 얼음의 녹은 정도와 막대의 꽂힌 각도 등 다양한 요인들을 잘 살펴 힘을 가해야 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하나를 둘로 쪼갤 때의 이러한 원리가 반대로 여럿이 함께 어우러질 때도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 마음에 닿는 구절을 찾았다. 사이좋게 지내려면 ‘사이’가 있어야 한다(김찬호, 「대면, 비대면, 외면」)는 문구를 보면서, 쌍쌍바의 두 막대 사이를 떠올린다. 사이좋게 나눠 먹기 위해 존재하는 그 공간이 어쩌면 사이좋게 지내는 ‘함께’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런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