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에도 감정이 섞이니까요
밥 대신 커피 마셔요.
배가 안 고픈 건 아닌데,
식사라는 게 은근히 피곤하더라고요.
뭔가를 씹는 동안엔 말을 멈춰야 하고
국물이 튀거나, 젓가락을 떨어뜨리거나
김이 입에 붙으면 괜히 민망해져요.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흐름을 끊고
그 흐름이 끊기면 대화도 자꾸 어긋나죠.
커피는 그런 게 없잖아요.
적당히 아메리카노를 시켜놓으면
종이컵에 담긴 채 조용하고
말하면서도 마실 수 있고
식사처럼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어요.
커피 하나 있으면 그 자리에 있다는 명분도 생기고
굳이 뭘 더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아요.
만남도 비슷했어요.
내가 뭘 먹을지 정하겠다고 하면
보통 초밥, 파스타, 덮밥 같은 거 몇 개 고르고
그중에서 뭐가 좋으시겠냐고 물어요.
근데 결국엔 그냥 파스타로 정리돼요.
익숙하고, 조용하고, 실패 확률 없고,
무난한 사람들과 나눌 무난한 음식이죠.
소개팅을 계속 하다 보니
이제는 점심 메뉴 고르는 직장인처럼 돼요.
앉으면 반찬부터 나오는 밥집처럼
대화도 메뉴도 루틴대로 흘러가죠.
그 사람에 맞는 식사를 고르기보다는
그 상황에 어울리는 구색을 맞추는 쪽이 쉬워요.
어쩌면, 식사를 고르는 게 아니라
“에러 없는 시나리오”를 정해주는 일에 가까워진 거죠.
그럴 바엔 그냥 커피 마시자고 해요.
밥을 먹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음식이 아니라
계산 타이밍이 언제였는지
옆 테이블이 시끄러웠는지
소스가 튀었는지 같은 사소한 피로들뿐이니까요.
커피는 그게 덜해요.
말도 가볍고, 마음도 덜 기대고
그래서 오히려 편해요.
밥은 관계예요.
익히고 씹고 삼키는 사이에 감정이 섞이니까요.
저는 아직, 관계를 소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그래서 커피를 마셔요.
그게 제 속도에 더 맞는 것 같거든요.
MY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