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일

구원이 아니라 무게를 택한 사람

by mio
그냥 믿으면 돼. 삶은 결국 잘 풀릴 거야.


세상에는 우리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말이 참 많다. 그 말들은 따뜻하고, 때로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어딘가 빠진 문장이 있다는 기분. 마음은 덜컥 안정을 받아들이는데, 사고는 자꾸 뒤를 의심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찾던 건 ‘책임’이라는 단어였다.


나는 초월적 세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 설명되지 않는 인과, 때로는 삶을 끌고 가는 어떤 질서 같은 것. 그것을 ‘신’이라 부르든, ‘우주’라 하든, 나는 그런 감각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건 잘 될 거야”라는 말로 모든 걸 정리하려는 흐름에는 거리감을 느낀다. 아무 조건 없이 주어진 낙관, 의심 없는 긍정, 설명되지 않은 믿음. 나는 그 앞에서 멈춘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방식이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면 나는 거기에 머물 수 없다.


요즘은 쉽게 위로하고, 쉽게 용서하고, 쉽게 털어내는 문화가 많다. “그럴 수도 있지.” “다 지나간 일이야.” 그런데 나는 자꾸 그다음을 묻게 된다. “그 일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 선택의 결과는 어떻게 감당할 건가?”


모든 걸 흘려보내는 태도는 부드럽지만, 너무 자주 책임의식을 흐릿하게 만든다. 자기가 뱉은 말, 만들어낸 결과, 피했어야 했던 행동... 이런 것들을 쉽게 묻어버리면, 삶은 깔끔해지는 대신 깊이를 잃는다.



나는 더 단단해지고 싶다. 그 단단함은 자기반성과 책임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실패 앞에서 “이건 다 과정이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건 내가 만든 결과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안심시키는 말보다 나를 각성시키는 질문을 더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보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말해주는 사람이 더 고맙게 느껴지는 사람.



그래서 나는 여전히 묻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선택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내가 만든 말과 태도가 어떤 파장을 만드는지. 나는 안심보다는 책임 쪽에 마음이 간다. 위로보다 각성에 가까운 감정.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해서, 삶을 조금 더 무겁게 붙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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