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젊지 않다.
어느 날인가부터 무릎이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나도 모르게 움찍거릴 정도의 통증이 생겼다. 약국을 찾아 무릎이 아파서 그러니 약을 좀 달라고 했더니 약사가 물었다.
"본인이요? 아님 어머님이요?"
약사의 눈엔 내가 아직 무릎이 아플 나인 아닌가 보다. 내가 아프다고 했더니, 다치신 거냐고 또 물었다. 아니라고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고 했더니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그런다.
"체중이 많이 나가서 그런 것 같은데..."
소염제와 진통제를 챙겨주며 약을 먹기보단 병원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약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얼굴을 붉히면서 약국을 나왔다. 민망함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무릎이 나아지진 않았다.
동네의 정형외과를 찾았다. 큰 병원이 아닌 동네의 정형외과는 대부분 노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허리나 무릎 통증, 어깨 결림을 느끼는 노인들이 진료 대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병원 진료 대기실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지팡이에 몸을 기댔고, 또 누군가는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신발을 벗고 다리를 주무르거나, 처방받은 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대기실 구석에서 나는 그들과는 다른 이유에서 병원을 찾은 듯한 느낌을 내고 싶었나보다. 잘 꼬아지지도 않는 다리를 꼬고 앉아 연신 재미없는 핸드폰만 들여다 보며 진료 순서가 되길 기다렸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자하고 무릎을 요리조리 만져보더니 무릎에 물이 찼다고 했다. 물을 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심하게 부딪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약국에서의 일이 떠올랐고 나는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 약 30ml의 물을 빼고 다시 또 물이 찰 수도 있는데 자꾸 반복되면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굳이 거짓말을 했을까?'라는 후회와 자책이 들었다. 무릎이 아픈 것 보다 마음이 훨씬 불편했다.
인터넷 검색에 열을 올렸다. 무릎에 물이 차는 이유를 검색하며 읽고 또 읽었다. 무릎에 물이 차는 이유는 첫번째로 부상이다. 외부 충격이나 과도한 운동으로 인해 염좌나 타박상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과도한 운동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염증성 질환이다. 류마티스 관절염, 통풍, 건선 관절염 등과 같은 염증성 질환이나 감염, 결절 및 종양으로 인해 관절내 염증이 생기는 것이란다. 이건 뭐 너무 심각하지 않은가?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세번째 이유는 퇴행성 질환이다.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퇴행성 관절염이나 연골 손상이 발생해 관절의 마찰을 증가시켜 염증을 유발하는 것이란다. 유력했다.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큰 병원을 찾았다. 서울대병원은 예약부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동네 정형외과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말들을 들었다. 다음과 같은 아주 친절한 설명이 보태지긴 했다.
"관절염을 단순히 '늙음의 징표'로 생각할 수 있지만, 관절염 초기 신호를 인지하고 적극적인 의학의 도움을 받아 생활 습관의 조정과 적절한 운동 및 식단을 하면 나아질 수 있습니다. 환자분은 극 초기이니 앞으로 잘 극복해 봅시다."
촌철살인이었다. 의사의 저 말은 내가 더이상 젊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었으며,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의 결과물인 나의 살들을 꼬집는 말이었다. 아직 나이 50도 되지 않았는데, 관절염을 진단받았다.
화가 났다. 아직 우리 엄마도 쌩쌩한데, 내가 관절염이란다. 기가 막혔다. 내 나이에 벌써 관절염이라니 당혹스럽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섭기도 했다. 관절염이 악화될 경우 일상에 불편이 커질까봐, 또 다른 증상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지나간 내 삶을 돌아보기도 했다. '식습관이 문제였나? ', '운동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나? ' 하는 자책들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렇지만 명쾌한 결론은 없었다.
병원을 다니며 잘못된 자세를 교정 했고 운동량을 늘렸다.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며 식단을 바꿨다. 노력을 한 만큼 생활에서 무릎이 아프고 붓는 건 많이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상처입은 내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했다. 갱년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만큼 힘들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