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군가가 많이 부럽다... 곧 쟁취하리라!!
마흔부터는 부러워야 이기는 거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참 묘하다. 청춘은 이미 저만치 떠나갔고,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자각이 뚜렷해진다. 삶의 한 가운데쯤 서서 뒤를 돌아보면, 이루지 못한 꿈과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쉬워지고, 앞으로 남은 길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며 조바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기를 지나며 한 가지 깨달았다. 마흔부터는 ‘부러워해야 이긴다’는 것이다.
스무 살의 나에게 부러움이란 일종의 경쟁심이었다. 친구가 나보다 잘 나가거나, 누군가가 멋진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그 부러움은 나를 더 분주하게 만들었다. 내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마흔이 지나 쉰이 되고 보니, 그런 부러움은 점점 내게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경쟁심에 매달려 무언가를 따라잡으려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멋진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감탄하는 것이 훨씬 더 나다운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누군가가 나보다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부족함만을 떠올렸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혹은 “내겐 왜 저런 기회가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결국 남는 것은 내가 스스로를 가두는 벽뿐이었다. 부러움을 경쟁으로만 받아들였던 내게는, 세상도 결국 끝없는 비교의 연속으로 보였으니까.
그런데 마흔 즈음에서 깨달은 부러움은 조금 달랐다. 누군가의 성취를 보고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것이 오히려 내가 몰랐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주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저런 삶도 있구나,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러움은 이제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풍경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되었다. 누군가가 한층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부러워하는 저 부분을 내 삶에 어떤 방식으로 채울 수 있을까?” 그렇게 부러움을 기점으로 내 삶에 새로운 요소들을 조금씩 추가해가며, 나는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
마흔 이후의 삶은 속도가 아닌 깊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부러움은 그 깊이를 더해주는 좋은 동력이 된다. 나와는 다른 삶의 방식,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들, 그리고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끄는 영감들. 부러움은 이제 더 이상 비교나 경쟁의 감정이 아니라, 배움과 성장을 위한 선물이 되었다.
마흔부터는 부러워야 이긴다. 부러움은 나를 더 나아가게 하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재조명하게 한다. 누군가를 부러워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아직 세상에 대해 설렐 줄 아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설렘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
마흔이 넘은 나의 삶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더 많은 것들을 부러워하며, 그 부러움을 통해 나 자신을 완성해가고 있다. 결국, 부러워하는 마음이야말로 마흔 이후 인생의 가장 큰 승리의 비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