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들켜버린 마음들_뉴욕 우버 요금 26만원

by 첨예하니

뉴욕에 가기 전부터 마음속에 하나 정해 둔 것이 있었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는 일이었다.

여행사를 통해 미동부 여행 상품을 알아볼 때도 나는 슬쩍 그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일정 안에 뮤지컬 관람이 포함되어 있는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패키지 일정에서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이 남았다. 뉴욕에 간다면 브로드웨이 공연 하나는 꼭 보고 싶었다. 여행 책에서 보았던 그 거리, 극장 간판들이 빛나는 밤거리, 공연을 보러 모여드는 사람들 속에 한 번쯤 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정 속에서 한 시간을 따로 만들어 냈다.

여행 둘째 날 오후, 센트럴파크에서 일행들과 헤어졌다.

패키지여행에서 잠시 빠져나온 작은 일탈이었다.

아이와 나는 지하철을 타고 브로드웨이로 향했다.

뉴욕 지하철은 생각보다 낡고 지저분했다. 역 안에는 오래된 철 냄새 같은 것이 희미하게 섞여 있었고,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가만히 서 있거나 벽에 기대어 있었다.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래도 역 이름이 하나씩 들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그 이름들이 방송으로 흘러나올 때마다 정말 뉴욕에 와 있다는 실감이 조금씩 났다.

뮤지컬을 고르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일 예매가 가능한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라이온 킹’과 ‘알라딘’이 남아 있었다.

라이온 킹의 대표 넘버인 Circle of Life를 무대에서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영화로 봤던 그 장면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보는 공연이라면 이야기가 익숙한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알라딘은 이미 영화로 본 적이 있었다.

영어 대사를 들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도 궁금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양탄자.

그 장면을 무대에서는 어떻게 보여줄까.

결국 우리는 알라딘을 선택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브로드웨이라면 당연히 한국보다 훨씬 큰 공연장을 떠올렸는데 생각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가 가까웠고 배우들의 표정이 그대로 보일 것 같은 크기였다.

대신 극장은 화려했다.

붉은 벨벳 좌석과 금빛 장식들, 그리고 무대를 가리고 있는 커다란 커튼. 극장 전체가 하나의 오래된 공간처럼 보였다. 아이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극장의 분위기가 낯선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고 극장 안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막이 오르자 공연은 빠르게 시작되었다.

배우들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컸고 또렷했다.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함이 있었다. 노래가 시작되면 객석 전체가 울리는 것 같았다. 무대는 계속 변했고 음악과 조명이 함께 움직였다.

아이의 시선은 한 번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공연을 보다가 가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이 조금 더 커져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가 익숙해서인지 영어 대사도 크게 어렵지 않은 듯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장면이 나왔다.

양탄자.

조명이 어두워지고 음악이 흐르자 양탄자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와이어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 장면은 충분히 환상적이었다. 배우들은 관객석 위를 날아다니며 노래를 불렀고 극장 전체가 하나의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잠깐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마 이 장면은 아이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공연이 끝났을 때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극장 밖으로 나오자 뉴욕의 밤이 그대로 쏟아졌다.

네온사인이 번쩍였고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 위를 걷고 있었다.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리에는 여전히 음악과 소음이 뒤섞여 있었다.

아이의 얼굴에는 아직 공연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깐 웃었다.

그때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떠올랐다.

호텔까지 어떻게 돌아가지.

우리가 묵고 있는 곳은 뉴저지였다.

패키지여행의 장점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버스가 있고 가이드가 있고 정해진 이동 방식이 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흐름 밖에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계산을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면 얼마나 걸릴까.

환승은 몇 번일까.

이 밤에 괜찮을까.

버스를 타는 방법도 떠올렸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애매했다.

아이도 꽤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우버 앱을 열었다.

잠시 후 화면에 숫자가 떴다.

26만 원.

나는 그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하철을 타면 훨씬 싸다.

조금 더 걸어도 된다.

여행이라는 것이 원래 조금 불편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계산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그냥 타면 안 돼?”

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에게는 이 상황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 우리는 피곤하고 호텔은 멀고 차를 타면 편하게 갈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계산하고 있었다.

26만 원이라는 숫자와,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 사이에서.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여행을 와서까지 이렇게 계산을 하고 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늘 말한다. 여행에서는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고.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도 괜찮다고.

그런데 막상 여행길 위에 서면 나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 효율적인 선택을 하고

더 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더 낭비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고.

나는 결국 우버를 호출했다.

차 안은 조용했다.

창밖으로 맨해튼의 야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와 나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조금 웃음이 났다.

26만 원짜리 이동이 이렇게 편안할 줄은 몰랐다.

아이에게 물었다.

“비싸다고 생각 안 해?”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비싸긴 한데… 오늘은 괜찮은 것 같아.”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여행이 끝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계산을 하며 살 것이다. 더 효율적인 길을 찾고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가끔 그런 계산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뉴욕의 밤거리에서

브로드웨이의 여운을 안고

26만 원짜리 우버를 타고 돌아오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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