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로 허영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고, 명품 가방이나 차에 크게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어떤 브랜드가 유행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알게 되더라도 그다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새로 산 가방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그저 “그래?” 하고 웃으며 넘기는 편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흥미롭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그것들이 내 삶을 특별히 바꿔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소박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욕망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허영심이라는 것은 꼭 물건이나 돈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브랜드에는 무심했지만, 다른 종류의 허영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 했고, 똑똑한 사람이고 싶어 했다. 그 욕망은 평소에는 조용히 숨어 있다가, 어떤 상황이 되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미술 앞에서 그 마음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나는 미술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편이다. 미술사나 사조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고, 작품의 의미를 깊이 있게 해석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한 구석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 오래 서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작품 설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다시 그림을 보고, 다시 설명을 읽다가 또 그림을 바라보는 그 반복이 이상하게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잘 알지 못해도 좋아할 수는 있지 않은가.
나는 종종 그렇게 나 자신을 설득했다.
그래서인지 살면서 해마다 한두 번쯤은 미술관을 찾게 되는 것 같다. 특별히 큰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 어느 날 문득 그런 공간에 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미술관 안에는 늘 조금 다른 공기가 흐른다.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천천히 걸으며, 오래 서 있는 공간. 그곳에 들어서면 일상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 분위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 마음이 조금 다른 모양으로 나타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늘 일정표를 만든다. 도시의 이름을 적고, 이동 경로를 그려 넣고, 그곳에서 무엇을 볼지 하나씩 채워 넣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거의 습관처럼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일정 속에 넣어두곤 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날에도, 어딘가 한 자리를 만들어 꾸역꾸역 끼워 넣었다. 도시의 거리와 풍경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텐데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일종의 증표 같은 것이었다.
이 도시의 ‘문화’를 보고 왔다는 증표.
나는 그 증표를 내 일정 속에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아이와의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에 도착한 뒤, 나는 자연스럽게 모마 미술관을 일정에 넣었다.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아이와 함께라면 훨씬 더 고단한 시간이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모네의 수련.
그 그림들 앞에 서 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와 함께 그 그림들 앞에 서 있고 싶었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서 “어렸을 때 모마에서 그 그림 봤던 거 기억나?” 하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 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술관 안은 예상대로 붐볐다.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전시실 안에서는 사람들의 어깨가 자주 부딪혔다. 작품 앞에는 늘 누군가가 서 있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그림 가까이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와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전시실 사이를 오갔다.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듯 멈췄다.
그리고 수련화가 있는 방으로 향할 때는 조금 더 속도를 냈다.
나는 그때 이상하게도 조급해져 있었다. 놓치면 안 될 무언가가 있는 사람처럼, 꼭 봐야 할 장면을 지나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림을 보러 온 사람이 아니라, 체크리스트를 지우러 온 사람처럼.
그 조급함은 곧 몸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몸은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무릎이 욱신거렸고, 발바닥에는 열이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괜찮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악 소리가 날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잠시 벽 쪽으로 물러나 무릎을 붙잡았다.
아이에게 물었다.
“혼자 다닐 수 있겠어?”
아이는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잠깐 스쳤지만, 이내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아 고개를 숙였다. 무릎을 붙잡은 채로,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십여 년 전, 대학원생을 데리고 파리에 갔던 날이었다. 유럽은커녕 비행기도 처음 타본다는 그 학생의 말에, 나는 괜히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이 아이에게 신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학회 일정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갔던 길이었지만, 어렵게 일정을 조정해 파리에 이틀을 머물렀다.
루브르 박물관과 물랑루주 쇼를 예약하며, 나는 내가 꽤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세계를 넓혀주는 사람이라는 기분은 은근히 달콤했다. 나는 그 학생이 그림 앞에서 놀라워하고, 공연이 끝난 뒤 감탄을 쏟아내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학생은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루브르의 긴 복도를 걸어도, 모나리자 앞에 서 있어도, 그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는 담담했다. 나는 그 무심한 반응 앞에서 조금 민망해졌다. 내가 기대했던 감탄은 나오지 않았고, 내가 준비한 세계는 그에게 크게 닿지 않은 듯 보였다.
그날 이후로도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은 나 자신의 공명심에 더 가까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무릎을 붙잡고 있던 그 순간,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적어도 이번에는 달랐다.
내 아이는 수련화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그림 앞에 조용히 서서, 그 색과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나를 찾지 않았고, 나는 아이를 부르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온전히 그 그림과 함께 있었고,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이의 표정에는 어떤 초조함도 없었다.
내가 느끼고 있던 조급함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집중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미술관에 집착하듯 발걸음을 옮기던 이유가, 꼭 아름다움을 향한 순수한 갈망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곳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곳에 와서 이런 그림을 본다’는 장면 속의 나.
그 장면이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내가 그토록 조급해하던 그림 앞에서, 아이는 아무런 조급함 없이 머물고 있었다. 나처럼 꼭 봐야 할 목록을 머릿속에 적어두지도 않았고, 나처럼 놓치면 안 될 장면을 계산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그냥 보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처럼,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움 앞에서 들켜버린 것은, 나의 취향이 아니라 나의 초조였다.
그 초조함은,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나아 보이게 만들고 싶어 했다는 증거 같았다. 나는 여전히 미술관을 좋아하고, 여전히 여행을 가면 박물관을 찾을 것이다. 다만, 그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가끔은 묻고 싶다.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정말 그림일까.
아니면 그림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일까.
수련화 앞에서 한참을 머물던 아이가 돌아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릎은 여전히 아팠고, 미술관은 여전히 붐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그림은 오래 남았다.
그림 때문이라기보다,
그 그림 앞에서 들켜버린 나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