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유럽,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2

벨기에 와플과 나의 친구

by 심플정쌤

아이가 어린 시절은 여행다운 여행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자신의 짐을 챙길 수 있을 때 여행은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느새 아이가 커서 6학년이 될 때쯤에 어학연수(스쿨링)을 계획했다. 6학년 올라가지 직전 방학을 기점으로 캐나다 단기 스쿨링을 같이 떠났다. 짧게라도 나도 영어를 배우고, 아이는 캐나다 학교를 6주간 보내게 되었다. 캐나다를 다녀 온 뒤 좀 더 자신이 생겨서 중1올라가지 전 유럽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바쁜 아빠와의 해외여행의 추억을 만드는 것과 이제 곧 중학교를 올라가면 맘 편히 긴 해외여행은 힘들거라는 생각과 유럽에 있는 내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계획과 코로나 때문에 못쓴 마일리지를 모두 써야 하는 수많은 이유를 가지고 와서 대대적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단 주의할 것은 무리하지 않기다. 사실상 캐나다행 때는 짧게나마 살다 오는 것이기에 많은 짐을 싸야만 했었다. 많은 짐을 싸다가 결국 웃픈 부부싸움을 하고 떠나야 했던 뼈아픈 기억을 교훈 삼아 무리하지 않기를 결심했다. 그리하여 가족여행 첫 번째 목표는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다. 좋자고 떠난 여행에 나쁜 기분은 여행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 뿐이기에.


우선 짐을 가볍게 싸자였다. 캐나다 때 짐을 쌌는데 아무리 살다오는 것이라고 해도 너무 고생하면서 쌌다. 한국마트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었으며 가격 또한 합리적이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여행은 더욱 가볍게 짐을 쌌다. 친구가 이것밖에 짐이 없냐며 놀라는 수준이었다. 장신의 가족 세 명이 기내용 캐리어 세 개뿐이니 말이다.

대신 계획을 꼼꼼이 세웠다. 활동을 많이 넣지는 않았지만 큰 계획들을 꼼꼼하게 세워서 우왕좌왕 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J성향이 가득한 사람들이 싸우지 않는 방안이다. 셋은 머리를 맞대고 계획표를 보며 수정할 사항은 수정하고 넣을 건 넣으면서 계획했다. 단 일정이 너무 많으면 어렵다. 꼭 하고 싶은 것이다. 큰 계획만 세운다고 봐야한다. 계획도 짐처럼 널널해야 한다. 요즘은 현지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시간이 촉박하고 정보가 많은 지역은 현지 가이드 투어를 미리 예약해서 활용하였다.


독일 가는 비행기에서 사색하고 일기 쓰고 여행 계획을 확인하고 드라마도 한 편 전부 봐주고 와인과 견과류를 먹으면서 독일에 도착했다. 늘 여행을 계획하고 짐을 싸면서 ‘비행기만 타자’라는 마음을 가진다. 진짜 비행기만 타면 그 전에 고생스러움은 없어진다. 그저 여행만 하면 된다.


언젠가 1박 2일로 가족들을 두고 도쿄를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그 때가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탄 날이었다. 갈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해가 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오랜만의 자유와 평온에 괜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난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몸이 되겠구나, 얼마남지 않았다, 건강만 하자 싶었다.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없던 그 시간들 동안 아이를 키우는 일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지만 이제는 나도 아이도 서서히 서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왔다. 항상 낯선 땅을 밟는 일은 흥분되는 일이다. 낯선 언어와 낯선 공항의 냄새는 어느새 나를 반긴다. 두리번거리고 긴장하면서 입국심사를 받고 나온다. 파란 여권을 본 모든 이는 우리를 붙잡거나 막지 않는다. 아주 편하게 입국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한번 애국심이 차오른다.

프랑크프루트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e-sim을 개통하는 일이다. 남편이 일을 병행하면서 여행을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나는 불안에 떨었다. 내가 강행한 여행이기에 로밍은 걱정 말라며 큰 소리친 상황이었다. 그래서 로밍, e-sim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유심카드까지 전부 준비했다. 무리 없이 연결되고 나서 나는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유럽도 와이파이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와서 알았다. 역시 너무 호들갑이었다.


프랑크프루트는 잠만 자고 아침에 친구가 있는 벨기에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동이 편하도록 우리는 숙소를 다 역주변으로 잡았다. 그런데 하나는 생각을 못했다. 역주변은 아무래도 밤이 되면 무서워진다는 것을. 밤이 되니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살짝 위축된 채로 호텔을 찾는데 이름이 비슷한 다른 호텔을 잘못 찾아간 것이다. 그래 여행은 이런거지 뭐. 힘들지만 다시 역 반대편에 있는 우리가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향하던 그 길이 너무 예뻐서 힘든지 모르고 갔다. 여행을 다녀보면 나라마다 특유의 색깔이 있는 것 같다. 그 빛깔들은 그 나라를 기억하게 만드는 추억이다. 해가 뉘역뉘역 지는 그 빛깔이 보일 때면 프랑크푸르트의 초저녘이 생각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낯선 지역을 활보하는 우리가 기억이 난다. 딸은 사진을 찍으면서 영화 속 잡지 속 사진 같다며 좋아하던 그 소리가 한 장면처럼 기억이 난다. 그 빛깔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호텔로 이동했다.

아침 일찍 독일에서 벨기에로 기차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이동했다. 기차 여행은 비행기와 다르게 지나치는 풍경 구경과 나라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 변화에 감탄을 하며 지루하지 않게 이동했다. 기차 너머 풍경이 여행온 이 상황을 더 잘 느끼게 해준다. 끝없는 초원도 나왔다가 각 나라에 집모양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나무의 모양도 구경하고 그렇게 친구를 만나러 벨기에에 향한다.

타지에서 친구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반갑고 멋진 일인지를 나는 이제 안다. 친구가 부탁한 한국 물건들을 캐리어에 잔뜩 넣어서 의기양양하게 가지고 갔다.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왔는데 반가운 친구가 100배는 더 반가웠다. 친구의 차를 타고 바로 투어를 시작했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지만 작은 공간 속에 모든 것이 다 모여있는 느낌이었다. 날이 추웠지만 추운 느낌이 나지 않았다. 세계 문화 유산인 <브뤼셀 그랑플라스>에서 여행은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아직 치워지지 않은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와 길거리 마켓들은 여전히 크리스마스 속에 있는 느낌을 주었다. 걸어도 힘들지 않은 그 거리 안에 아기자기 안에 모든 것이 모여 있었다. 유럽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골목 골목 눈을 떼지 못하는 이국적임과 아기 자기함이 어느새 내가 여기 왔구나 느껴진다.

우리는 벨기에에 왔으니 벨기에 와플로 시작을 한다. 크림이 잔뜩 올려져 있어서 느끼하게 보였지만 여행의 기분 탓인지 느끼하지도 않고 길거리에서 크림을 뚝뚝 흘리면서 먹는 나를 보면서 다시 여행의 재미가 찾아왔다. 한국에서는 다 큰 어른이 크림을 뚝뚝 흘리면서 먹기는 쉽지 않은데 여기서는 누가 뭐랄까 이렇게 행동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친구와 웃으며 와플을 먹었다. 벨기에에서 벨기에 와플 먹는 중임이 무척 벅찼다. 또한 저 크림이 잔뜩 올라간 것을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폭삭한 와플빵에 각종 토핑과 부드러운 크림이 느끼함을 넘은 맛있음이었다. 하나 더 안먹은 것이 지금도 후회스럽다.


친구가 벨기에에 왔으니 이건 보고 가야지 하면서 <오줌 싸개 동상>으로 데려갔다. 그랑플라스에 있는 <오줌 싸개 동상>은 복제본이고 원본은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 중 적의 화약 있는 곳에 소년이 오줌을 싸서 불을 꺼 도시를 구했다는 이야기로 비롯된 동상이라고 한다. 옷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내가 간 날은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그저 소년 동상에 불과하지만 유명한 것은 보고 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들 귀여운 동상 앞에서 인파들 사이에 사진찍느라 바빴다.


친구의 차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오는데 아기자기한 도시 풍경을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친구의 넒은 오래된 유럽식 아파트는 나에게 새로웠고 너무 멋졌다. 친구덕분에 고풍스러운 오래된 유럽식 아파트를 와본다싶다. 안에는 우리나라에 가져가면 비싼 가전제품들로 풀옵션으로 채워져 있었다. 친구는 유럽 그릇 모으기에 취미가 들어서 빈티지 샵을 많이 다닌다고 했다. 이색적인 실내 디자인들을 보며 한국 아파트를 이렇게 꾸밀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꼭 한번 내가 사는 집을 유럽식으로 꾸며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날 저녘식사로 친구는 스위스 음식 라끌렛을 해주었다. 스위스 음식이라면 아는게 퐁듀가 전부인 우리에게 라끌렛은 신선했다. 각종 고기와 해산물 야채 등을 구워서 녹인 치즈와 같이 먹는 음식이다. 와인과 맥주가 함께해 더 풍미가 도는 저녘식사였다. 너무 맛있어서 라끌렛 불판을 구매해서 지금도 가끔 집에서 해먹는다.

다음날 친구가 차로 근교인 <겐트>를 구경시켜주었다. 겐트는 중세도시모습이 잘 나타나 있고, 도시가 작아서 걸어서 짧은 시간에 전부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다. 도심에 있는 성 브라보 성당에 들어가서 1유로를 내고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종교로 인해 유럽을 돌 때면 보이는 성당은 되도록 들어가서 1유로 정도를 봉헌하고 초를 켜고 기도를 하는 것이 여행의 루틴적인 행동이다. 마음도 편해지고 내가 할 일을 다 했다는 기분이 든다. 여행 중에 중심 도시 근교를 다녀 보는 것은 오히려 그 나라의 원래 모습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고 작은 도시여서 걷기 편한 경우가 많다. 겐트 역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어디로 눈을 돌려도 <여기 유럽!> 이라는 느낌이 팍 드는 도시였다.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경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옛날 유럽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으로 산책하는 느낌이 작지만 강한 느낌의 도시였다.


브뤼셀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친구 집 근처에서 작별의 맥주 한 잔을 하였다. 친구와 함께한 곳에서의 사진에는 밝은 웃음만 가득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와 수다를 떠는 일이 행복했고 편안했고 즐거웠다. 친구와 마신 맥주 한잔은 근래에 먹는 맥주 중에 가장 맛있었다. 친구를 보러온 일은 이 여행 속에서 ‘나’를 찾는 일 중에 하나였다. 이제 조금씩 육아를 벗어나 나의 인연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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