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여행자의 현상소

기억을 인화하는 시간

by 빛날애

8년 만에 마시는 인천공항의 공기였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6박 7일의 여정.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무인 운영 시스템 덕분에 비로소 가능해진 시간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행을 떠났다는 해방감보다, 내가 서울에 없어도 공간들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무인 매장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시간적 자유’였으나, 그 자유는 내게 지나치게 낯설었다.

아이들과 내가 꿈꾸던 파리의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화려한 장면들 대신, 우리는 시부모님과 함께하는 가성비 좋은 일본 여행을 택했다. 거창한 랜드마크를 정복하는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과 우리가 걷는 모든 공간 속 낯선 경험들을 마음속 필름에 한 장면씩 기록해 두기로 했다.

행복을 찾는 일은 때로 복잡하고, 때로는 아주 단순하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순하던 아이는 사라지고, 자기주장을 또렷이 내세우는 사춘기 소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아이의 뾰족한 말들에 상처받는 내 모습이 생경해 관련 책을 섭렵하며 “사춘기야, 와라!”라고 호기롭게 외치기도 했지만, 결국 나 역시 무너질 때는 사정없이 무너지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었다. 여행을 앞두고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던 건 내 안의 ‘불안 장치’ 때문이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대가족 여행에서 혹시라도 사춘기 아이가 분위기를 흐리지는 않을까. 나는 결국 아이들을 앉혀두고 ‘가족회의’라는 이름의 당부를 시작했다.


여행지의 불편함 또한 즐기기

낯선 장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하기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거창한 무엇을 얻어오기보다, 그저 낯선 경험을 하고 새로운 장면들을 마음에 남겨 시선이 확장되기를 바랐다. 낯선 느낌을 기꺼이 즐기고 서툰 것들을 받아들이며, 돌아와서는 그 시간을 가만히 그리워할 줄 아는 마음. 여행의 가치는 어디에 다녀왔느냐가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졌느냐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여정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시작되었다.

새벽 공항버스

출발 당일 새벽 5시, 눈이 번쩍 떠졌다. 오전 9시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느긋한 남편과 잠에 취한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메모해 둔 체크리스트를 보고 또 보며 잊은 건 없는지 확인했다. ‘파워 계획형’인 나에게 준비는 불안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여행자의 새벽 공기는 상쾌하기보다 어쩐지 괴괴했다. 공항버스에 올라 아이들의 숨소리가 일정해질 때까지 나는 창밖을 보았다. 아직 어스름한 도로 위로 간헐적인 가로등 불빛이 스쳤다. 모두가 잠든 사이 홀로 깨어 계획을 복기하고 무사 안녕을 빌었다.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누군가는 잠들고 누군가는 깨어 있는 법이다. 나는 늘 깨어 있는 쪽이었다.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륙의 진동과 안내 방송의 음성을 놓치지 않으려 마음을 세웠다. 잠든 가족과 깨어 있는 나 사이에 여행이 놓여 있었다.

공항에서 뜻밖의 지연(遲延)을 만났을 때, 오히려 느긋한 커피 타임이 주어졌다. 그 작은 틈이 여행의 속도를 미리 낮춰주는 예방주사처럼 느껴졌다. 목적지에 도착해 마주한 끝없는 입국 심사 줄 앞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했다. 덥고 지칠 법한 상황에서도 함께한 시부모님의 얼굴에는 기다림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미소가 있었다. 그 미소 앞에서 내 안의 강박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세팅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행복은 모든 것이 완벽해서 오는 게 아니라, “이 정도면 괜찮다”라고 서로에게 허락해 주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계획은 종종 흔들렸지만, 그 불완전함을 서로의 미소로 메워가고 있었기에 이 여행은 이미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인천 공항/신치토세 공항 국내선

여행 5일째, 우리는 시부모님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우리 식구만 따로 국내선을 타기 위해 신치토세 공항으로 향했다. 8년이라는 공백이 아쉬워 마련한 우리 다섯 식구만의 2박 3일. 혹여나 서운해하시지는 않을까 내심 마음이 쓰였으나, 시부모님께서는 오히려 "참 잘했다, 우리 걱정 말고 재미있게 놀다 오너라"라며 따뜻하게 등을 토닥여 주셨다.

그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여행 내내 고된 스케줄에도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고 함박미소만 지으시던 두 분의 진심이 그제야 온전히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손주들과 함께한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조만간 또 함께 길을 나서겠노라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렇게 가족의 배웅을 뒤로하고 공항 로비에 앉아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던 손이 멈추자 비로소 보였다. 나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늘 불안이라는 끈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행기 안에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은 생각보다 깊고 고요했다. 책임에서 잠시 내려온 자리는 가볍기보다 적막했고, 그 적막 속에서 나는 오래 미뤄두었던 질문을 꺼내 들었다.


‘왜 나는 쉬는 데에도 이렇게 오랜 허락이 필요했을까. 왜 멈추지 못하는 삶만을 성실함이라 믿어왔을까.’


도쿄로 향하는 구름 위에서 나는 비로소 그 질문을 정면으로 붙들었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을 건너와 마주한 자유는 여전히 낯설고 서글펐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도쿄에 도착하기도 전, 이미 홋카이도의 그 시린 눈밭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모든 것이 거대하고 소란스러웠던 내 삶의 현장과는 달리, 홋카이도는 새하얗고 정갈했다. 시부모님과 아이들의 발걸음이 머물렀던 그곳엔 내가 그토록 외면해 왔던 작고 귀여운 진심들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들려오던 소박한 눈 밟는 소리,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비로소 고개를 들기 시작한 고요한 풍경들.

아름다움을 만나면 소유하고 싶고, 삶에 의미라는 무게를 얹고 싶은 욕심이 여전히 나를 흔든다. 하지만 이제는 6펜스의 현실로 돌아가더라도 내 마음속엔 헬륨 가스를 채운 풍선 하나가 다시 떠다니리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도쿄의 화려한 불빛 속으로 가기 전, 나를 먼저 정화해 주었던 그 새하얀 홋카이도의 장면들을 나는 이제 하나씩 꺼내어 보려 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이미 그곳에서부터, 나의 여행은 의미 있었노라.


<홋카이도의 하얀 필름 :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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