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용을 만나 어머니는 사실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24살에 저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저는 용띠 띠동갑이지요. 드센 용띠 여자가 집안에 둘이나 있어, 아버지와 오빠는 기를 펴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지요. 실제로 어머니와 저는 많이 부딪히는 편이었고요. 드센 용띠 둘은 오늘도 티격태격하며 병원에 왔습니다.
종양내과 첫 진료가 있는 날입니다. 어머니는 her2 양성이라 항암치료를 먼저 합니다. 선항암을 통해 암세포 사멸 정도를 파악하고 수술을 합니다.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완전관해라고 하는데, 이를 목표로 치료 계획을 세우지요.
표준 항암치료 과정은 전 세계가 동일합니다. Her2 과발현 세포를 공격하는 허셉틴이라는 표적항암제와 탁솔계 독성 항암제를 기본으로 쓰고, 기수에 따라 퍼제타와 캐싸일라라는 표적항암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퍼제타와 캐싸일라 가격은 천문학적이라... 걱정이 많습니다. 서울병원에서도 같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을 확율이 높습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올라온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5시에 종양내과 진료가 예약되어 있습니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상담 지연이 70분이나 됩니다. 5시 예약인데, 6시 10분이나 되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생각해보니 어딜 잠시 다녀와도 되었을 텐데... 어머니께서는 불안하신지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오늘 진료 못 받는 거 아니가?"
6시까지 기다렸는데, 다시 상담 지연이 늘어납니다. 아무래도 7시는 되어야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것이야 괜찮지만, 혹시나 다른 날로 진료를 미루게 되는 것이 두려워 간호사에게 하소연을 해봅니다.
"진료가 많이 지연되었네요. 좀 늦어도 교수님이 진료는 다 해주셔요. 편안히 조금만 기다려주셔요."
아무리 늦어도 진료는 해준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이렇게 몇 시간 하염없이 기다리며 드센 용띠 여자 둘은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생명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음을 서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마음으로 새기고 있었습니다. 전광판에 어머니 대기번호가 뜹니다. 다음이면 어머니 진료라, 진료실 앞으로 자리를 옮겨 대기합니다.
진료실 문 옆에 교수님의 사진과 성함이 있습니다. '김태용'... 교수님 태몽은 용꿈이셨나봅니다. 아니면 교수님께서도 용띠이신 모양입니다. 큰 용이 되라고 클 태자와 용용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을거란 상상을 하며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진료를 보셨던 분들이 나오십니다.
"상담이 지연되는 이유가 있네요.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니까 그렇네요."
2시간을 넘게 기다리며 지친 얼굴로 진료실로 들어가신 환우분은 편안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왔고, 우리도 얼른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허셉틴, 퍼제타, 도세탁셀, 카보플라틴을 사용하는 것이 표준치료인데... 면역항암제를 쓰는 임상이 있습니다."
"교수님 저희 그거 할게요. 최대한 빨리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희에게 다른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감사하게도 어머니께서는 큰 용을 만나서 사실 것 같습니다. 오래 기다리셔서 지칠 법도 한데, 교수님을 뵙고 나온 어머니께서도 교수님 걱정과 칭찬으로 열을 올리십니다.
"역시 **대학교병원이다. 환자 하나하나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황송하다. 금요일 퇴근시간을 2시간이나 넘었는데... 궁금한거 있으면 더 물어보라고... 어느 병원에 저런 의사가 있겠노?"